죽음에 관하여 - 故 장남수 선배의 영전에 부쳐
죽음에 관하여 - 故 장남수 선배의 영전에 부쳐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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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 귀가 순해진다(耳順)는 소릴 듣게 될 만큼 세상을 살았다 해도 죽음에 대한 언급은 언제나 서러운 일이다.

「사람 밖에서 살던 사람도/ 숨을 거둘 때는/ 비로소 사람 속으로 돌아온다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 부분)」는 시인의 말처럼 장남수 선배가 졸지에 이승과의 하직을 위해 서울에서 고향땅 청주로 돌아와 누웠다.

영면하기 전날 저녁부터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리고, 간절한 기도의 영험은 통하지 않은 채 새벽부터 부음의 안타깝고 서글픈 소식이 잇따랐다.

장남수 선배. 살아남은 모든 것들과 영영 이별하는 먼 길을 떠난 고인은 나와는 가볍지 않은 막역함을 나누던 인연의 질긴 끈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장남수 선배의 영전에 바치는 글을 쓰는 것이 어찌 오롯한 개인적 `관계'만을 염두에 둔 것이겠는가.

위급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전날부터 영면의 비보가 날아든 새벽까지 숱하게, 그리고 간절하고 애절하며, 안타깝고 서러운 `전달'을 주고받으며 돌아올 수 없는 길과 남아 있는 공간의 경계 사이에서 사람 사이의 애틋한 `관계'가 새삼스럽다.

장남수 선배와 사는 동안의 인연은 연극과 언론, 그리고 친목모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의 일이 중첩된다.

내가 동아리 규모의 학생 연극에서 벗어나 기성극단의 첫 창단공연의 연출을 맡았을 때, `그때까지 본 작품 가운데 가장 뛰어난 뮤지컬'이라며 넘치는 격려로 나를 달뜨게 하던 일. 새내기 기자가 되어 충북지역에서 첫 번째로 열리던 전국체육대회를 취재하던 어느 날 나름 고심했던 첫 리드 문장을 들고, 팔뚝에 돋은 소름을 내보이며 편집국 곳곳에 자랑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고 장남수 선배는 그만큼 내 편이었고, 나를 잘 알고, 잘 알아주던 `공통감각'의 깊은 인연이 있다. 무심하게 넋 놓고 있는 동안 무수한 나와의 `관계'들의 안부와 걱정, 그리고 안타까움과 서러운 회한으로 이어지는 부음의 소통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죽음이라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 사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인연을 새삼 기억하며 확인하고 안도하는 `관계'의 재정립이 아닌가. 지상의 직립에서 버티지 못하고 꽁꽁 묶인 몸으로 땅 밑에 눕고 마는 영원한 별리의 순간, 고인과의 인연은 기억으로만 남을 것이고 그 기억 또한 살아남은 사람 사이의 `관계'속해서 유통기간이 정해질 뿐이다.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죽음이라는 `끝'의 순간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평생 연극이라는 끈을 놓지 않았고, 영면의 시간이 닥쳐오고 있는 줄도 깨닫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 고 장남수 선배를 다만 얼마만이라도 기억으로 간직하는 일은, 이제는 끊어진 그와의 `관계'사이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연극인으로서, 그리고 충북예총 회장으로서 그를 추모하는 일은 세월이 흐를수록 간절하지도 선명하지도 않게 사라질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고인으로 인해 유지되고 소통되었던 `관계'의 영원하고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확인하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남겨진 `관계'들 사이에는 살아 있는 동안의 `공존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이고, 그런 다짐은 대개 장례식장이거나 영면의 장지에서 각성되기도 한다.

고 장남수 선배의 죽음에 관하여 추모하면서 굳이 생전의 발자취나 업적을 열거하는 일은 새삼스럽다. 다만 그가 청춘으로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연극에 몰입할 수 있었고 지역의 예술단체를 대표했던 일은 당사자이거나 남아있는 애증을 떠나 축복으로 추억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한 해마다 복숭아를 볼 때마다, 복숭아 알레르기에 쩔쩔매던 그를 즐겁게 기억할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것. 영원한 별리를 통한 `관계'의 끝에서 다시 남아있는 `관계'를 죽을 때까지 부활하는 일. 「숨을 거둘 때는/ 비로소 사람 속으로 돌아온」그는 지금쯤 하늘에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을 연기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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