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본색
남편의 본색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1.09.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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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벚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여름 끝자락부터 새치처럼 드문드문 보이던 노란 잎은 이제 멀리서도 확연할 만큼 제 색을 드러내고 있다. 간간이 떨어진 낙엽만으로도 산책길은 제법 가을 정취가 묻어난다.

초록 잎들은 열심히 광합성을 했었다. 본능적으로 몸집을 불리고 땅속 잔뿌리를 촘촘하게 뻗어내고, 내년에 새순을 틔울 수 있을 만큼의 양분도 비축했다. 무엇보다 비바람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키워내는 걸 매일 아침 오가며 보지 않았던가. 그렇게 떠나보낸 씨앗들은 봄이 되면 곳곳에서 싹을 틔울 것이고, 그중 한둘 정도는 큰 나무가 되어 어미의 뒤를 이어갈 것이다. 그만하면 할 일은 다 했다. 그러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단풍들어가면서 가을볕과 바람을 즐겨도 좋으리라.

단풍이 드는 건 더는 광합성이 필요 없게 되어 엽록소가 빠져나가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색소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온몸을 겹겹이 싸고 있던 초록 더께가 걷히기 시작한 잎들은 그래서 그런지 한결 가볍고 여유 있어 보인다.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집어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벌레 구멍이 꽤 여러 개 나 있다. 검버섯처럼 잎 가장자리로 거무튀튀한 반점도 박혀 있고, 색깔도 노랑 주황 등 몇 가지 색이 섞여 딱히 붉은 단풍잎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예쁘다. 아니 그래서 더 어여쁘다.

가끔 오래된 책을 펼쳤다가 납작하게 말라버린 단풍잎을 발견할 때가 있다. 여고 시절 책갈피에 끼워 뒀던 것들이다. 그땐 가을이면 일부러 예쁜 단풍잎을 골라 두꺼운 책 속에 넣어두곤 했었다. 무조건 깨끗하고 온전한 모양의 색깔이 선명한 단풍잎을 좋아했었다. 근데 요즘 왜 자꾸 흠집도 있고 색깔도 그저 그런 평범한 단풍잎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왜 벌레에게 내어준 마음 구멍이 먼저 보이고, 여기저기 묻어나는 삶의 흔적들에 정감이 가는 걸까. 아마도 내가 단풍들어가는 모습도 그와 비슷해서가 아닐까?

아이들이 둥지를 떠난 뒤부터 나는 내 안에 품은 색소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외의 모습에 신기했고 내게 이런 소질과 열정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찼다. 내 삶이 점점 더 자유롭고 풍성해지는 걸 느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런 나를 부러워하면서도 좀체 엽록소를 버리질 못한다. 광합성이 아니라면 삶의 의미가 없는 사람처럼 일 중독에 빠져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일할 땐 눈빛이 빛나다가도 일하지 않는 시간엔 뭘 해야 할지 몰라 생병이 나는 사람, 자신만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줄 모르는 사람. 그 덕에 자식 셋 키우며 큰 고생 안 하고 살았지만, 그런 남편을 보면 답답하다. 남편도 이젠 그가 가진 색으로 단풍들어도 좋으련만.

남는 시간에 나만 바라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취미생활 한 가지도 선뜻하지 못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이것저것 권해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이 목공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근처에서 목공방을 운영하는 막내 매형도 있겠다, 처음엔 함께 시작하면 되니까 원목 캣타워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결심을 도와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드디어 남편의 심장을 뛰게 할 일을 찾은 건 아닐까 은근 기대도 되었다. 남편은 과연 본색을 드러낼 수 있을까? 본색이 드러난다면 무슨 색일까? 어쩌면 나보다 더 고운 색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설마 단풍드는 일도 광합성처럼 죽기 살기로 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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