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구에서 '환경사'를 아시나요?
역사연구에서 '환경사'를 아시나요?
  •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 승인 2021.09.27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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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김명철 청주 금천고 교장

 

역사연구 분야 가운데 ‘환경사(Environmental History)’분야가 있다. ‘환경사’가 역사학계에서 등장하여 하나의 학파를 이룬 것은 1976년 미국에서 환경사학회가 만들어진 이후였다. 미국에서 환경사가 가장 먼저 발달하게 된 것은 1962년 DDT 살충제의 생태계 파괴 폭로 사건과 관련이 있다. TIME 지에서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인물 100명 중 한 명인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이 발간되고, 이후 환경사라는 말이 선구적인 학자 로드릭 내쉬(Roderick F. Nash)에 의해 만들어졌다. 1999년 유럽에서 세계환경사학회가 결성되었고, 2009년 대만에 동아시아환경사학회가 만들어지면서 환경사가 알려지게 되었다. 
환경사는 단순한 문헌학이나 고고학이 아니다. 생태학과 지리학, 인류학, 자연과학을 그 기원으로 삼을 만큼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종합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상호관계의 역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가 인간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점을 소홀히 생각해왔던 것을 연구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 연구자들이 환경사, 즉 생태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역사의 변화상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가 있다. 1996년 이태진 (서울대)교수의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소빙기’ 연구가 그 최초다. 그러나 역사학계의 반발은 예상외로 거세었고, 이후 역사연구의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한반도 자연환경에 관한 기록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한국 역사학계에서 본격적인 기후사·환경사의 시작을 여는 의의가 있다. 
이태진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신·을병대기근을 비롯한 17세기 후반 유민의 숫자는 15세기 대기근 때보다 최소 3배 이상, 넉넉잡아서 30배 정도의 규모로 추정되며, 그 발생 지역 범위도 전국적인 수준이었다. 이러한 큰 차이는 기후 요인의 여파일 가능성이 있는데, 17세기 후반 전례 없는 유민의 발생은 조선 정부의 유민 대책의 원칙을 포기하게 했다.”라고 결론을 지었다. 
학자들은 ‘기후 현상은 우주와 지구의 여러 물질 순환 과정이라는 복잡한 상황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역사 속에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세계의 수많은 농민은 기후와 날씨의 영향 아래 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세계의 저개발국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는 지금도 기후변동의 여파가 직결되고 있으며, 21세기 기후 위기는 인류 전체에 위협이며 숙제임이 분명하다. 브라이언 페이건은 “역사에서 인간과 기후 간의 관계를 무시하는 것은 그림으로 치면 인간사의 역동적인 한 배경을 빼먹는 짓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학계의 환경사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환경사를 여전히 기후결정론(환경결정론)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는 그만큼 기후변화와 인간 사회 대응의 관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역사학계에서는 17세기 소빙기 논의 이외에 다른 시기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가 거의 진전되지 못한 상황이다. 
환경사는 학문 간 공동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방법론을 도출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통사 연구가 시급한 분야라 할 수 있다. 학문 분과를 넘어선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환경사 연구는 지구 환경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 대책을 수립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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