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긴긴밤
  • 김현숙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1.09.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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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김현숙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김현숙 충북교육도서관 사서

 

둥근 달 높이 뜬 가을밤, 루리 작가의 `긴긴밤'을 만났다.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이 자신들만의 바다를 찾아가는 이야기. 노든의 고단한 삶이 내게 전해지는 듯, 책을 읽는 내내 울음이 찰랑거리며 가슴에 스며들었다.

누구에게나 막막하고 힘든 시기가 있다. 상처투성이인 채로 긴긴밤을 혼자 버텨낸다고 생각하면 터널 속에 갇힌 것처럼 절망적으로 막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어떨까?

이 책은 인간에 의해 아내와 자식을 잃고, 친구까지 잃게 된 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로 태어나 이름 없이 살게 된 아기 펭귄이 함께 자신들만의 바다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이 담긴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다독이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물들의 따스함이 상황과 대화 속에서 잘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족이 주는 행복, 친구가 되는 과정, 서로를 위로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노력해 가는 모습에서 혼자보다는 함께 한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두 번째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뿔을 가진 현명한 아내를 만나고, 귀여운 딸까지 낳은 코뿔소 노든의 삶은 상상 이상의 행복이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해 말을 아낄 정도였지만 인간으로부터 그들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아픈 사랑이다.

또한, 장애물이 없는 바깥세상에서 바람처럼 빨리 달려보고 싶어 했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 동물원 친구 앙가부를 애도하는 일도 사랑이요, 버려진 알을 선뜻 따뜻한 가슴으로 품을 줄 아는 펭귄 아빠 차쿠와 윔보, 그들이 부탁했던 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 펭귄을 바다로 데려다 달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긴긴밤을 외로이 보냈을 노든의 의리도 사랑이다.

초록으로 일렁거리는 초원에 남기로 한 병든 노든이 푸른 하늘빛 지평선이 있는 바다를 찾아 초원을 가로질러 떠나는 아기 펭귄이, 돌 뒤에 숨어서 다시 자갈밭을 가로질러 나무로 된 울타리를 넘어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서서 뒷모습을 바라봐 주는 것도 걱정과 배려의 먹먹한 사랑이다.

이런 사랑으로 어린 펭귄은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검푸른 바다로 뛰어들 용기를 내고,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낼 수 있으며,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힘을 낼 것이다.

먼 훗날 건강해진 노든과 늠름하게 성장한 아기 펭귄이 다시 만나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서로 다가가 뿔과 부리를 부비며 만나는 장면이 있는 2편을 기대한다.

나의 바다에서 오롯이 한 인간으로서 서서 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긴긴밤이다.

오늘도 둥근 달은 가을 하늘 높이 떠 있고, 메밀꽃같이 반짝이는 별들이 까만 밤을 수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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