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라 속에서의 영원 1
찰라 속에서의 영원 1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9.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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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금요일은 떨리는 날이다. 창작 아카데미 시 창작교실 수업이 있는 날이다. 10여명의 수강생들이 열공하는 강의실의 열기는 뜨겁다. 기성 문인과 이제 막 입문한 미래의 신예문사들로 구성된 수강생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 시간을 기다리는 건 수강생들뿐만이 아니다. 공주, 부산, 목포, 청주 등 거리가 멀어 참여치 못하여 아쉬워하는 이들도 기다리는 시간이다. 이 창작아카데미 시 교실이 인기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장르의 수업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로 단장시조다. 처음에는 자유시로 평범하게 시작하였는데 우리 민족 고유의 시조를 소개하던 중 시조의 종류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연시조를 소개하고 양장시조와 단장시조도 있다는 걸 알려만 주었는데 의외로 짧은 단장시조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시 교실이 활기를 띠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단장시조. 일찍이 노산(山) 이은상(李殷相) 선생이 `양장시조(兩章時調)'라는 실험적 양식을 추구한 바는 있지만, `단장'의 미학으로 전일적인 시적 기획을 선보인 경우는 우리 시조 문학사에서 사례가 없는 일인 줄 안다. 여기서 `단장시조(單章時調)'란, 종장만으로 발화(發話)를 완결하는 일종의 변형된 시조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압축과 긴장을 속성으로 하는 시 양식 가운데서도 가장 선명하게 `찰나 속에서의 영원'을 꿈꾸는 욕망의 형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일본의 `하이쿠[俳句]'는 자연과 계절에 대해 선명한 이미지로 노래하는 한 줄짜리 짧은 시이다. 일본에만 애호가 100만을 헤아린다고 하는 이 단형의 정형 양식은, 지금도 그 울타리를 세계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그 하이쿠의 대표 시인이라고 할 만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자신의 문하생들에게 “모습을 먼저 보이고 마음은 뒤로 감추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하이쿠'가 추구하는 양식적 목표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사물의 `모습'을 선명한 이미지로 드러내고 시인의 `마음'은 적절하게 생략하거나 은폐함으로써 어떤 시적 효과를 얻는 데 있다. 이러한 `드러냄'과 `숨김'의 긴장을 통해 이 단형의 정형 양식은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얻어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같은 하이쿠의 기율과 단장시조의 그것이 충실하게 접점을 형성할 여지를 발견하게 된다.

단장시조는, 이러한 단형의 정형 미학이 갖고 있는 미적 정수(精髓)를 매우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가령 “할 말을/자제하면서/제 할 말을”(?시인은?) 다하는 역설적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 결과 언어를 통하되 그 언어를 넘어서려는 시적 욕망을 스스럼없이 내비치고 있다.

첫 단장시조집 “퇴화의 날개”에 평론을 쓴 한양대 유성호 교수의 말이다. 당시 퇴화의 날개는 교보, 영풍문고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는 열풍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에게 큰 관심과 사랑 속에 주목받는 책이 되었다. 남이 하지 않는 분야이기에 그저 실험적으로 반응을 보고자 했던 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면서 연이어 “허공의 집”과 “단장의 메아리”를 출간하면서 유일무이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단장시조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제까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일본의 하이쿠는 5/7/5조로 17자이다. 단장시조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문학 시조의 종장, 3/5/4/3만으로 완성시켜야하는 극도로 함축되고 압축된 정형시이다. 1자를 더 넣어도 빼서도 안 되는 치열함. 단장시조란 “극도로 달이고 다린 소금 또는 진신사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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