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를 읊다
국화를 읊다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9.1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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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가을을 대표하는 꽃은 뭐니뭐니해도 국화일 것이다. 거친 산야에도, 소박한 시골집 앞마당에도, 낮은 담장 아래에도, 기품 있는 문사의 창틀 위에도 국화는 어김없이 고매한 빛을 발한다.

예로부터 문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꽃을 꼽으라면 단연 국화가 꼽힐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고의후(高依厚)도 빠지지 않고 국화를 노래한 대열에 끼었다.


국화를 읊다(詠菊)

有花無酒可堪嗟(유화무주가감차)
꽃 있고 술 없으면 어찌 탄식하지 않으랴?

有酒無人亦奈何(유쥬뮤인역내하)
술 있고 사람 없으면 또한 어떠하리오?

世事悠悠不須問(세상유유불수문)
세상 일들은 아득하여 모름지기 물을 것 없으니

看花對酒一長歌(간화대주일장가)
꽃 보며 술 놓고 길게 노래하리라

시인에게 국화는 범상한 꽃이 아니다. 탐미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삶에 대한 관조를 이끌어 주는 길잡이로서 그 존재는 다가온다. 그래서 시인은 국화를 보면 술 생각이 나고, 나아가 벗이 그립게 된다.

시인이라고 해서 국화를 보면 아름답다거나,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시인은 한 걸음 더 나갈 뿐이지만, 다다른 곳은 탐미와 감상의 지점을 지난 관조의 세상이다. 시인은 국화를 통해 세상을 관조하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력자를 빼놓을 수 없으니, 술과 벗이 그것이다. 은자의 꽃으로 알려진 국화와 근심을 잊게 하는 물건이라는 술과, 이를 잘 알고 있는 벗, 이렇게 삼자가 어우러지면 복잡다단한 세상사는 아득히 먼 세상의 일일 뿐이다.

세상 일이라는 것은 끝도 시작도 없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니 굳이 따져 물을 게 없다. 꽃 보고 술 마시며 벗과 청담을 나누는 것, 이 하나만으로 족한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다.

또 가을이다. 또 국화이다. 들과 산이라도 좋고 고향집 앞마당이라도 좋다. 그저 국화 핀 데면 다 좋다. 술 한 병 차려 들고 벗과 함께 앉아 실없는 얘기 하며 가을 한때를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이미 경지에 이른 것이리라.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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