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대장에 그친 빅테크들
골목대장에 그친 빅테크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9.12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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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떡볶이를 놓고 대기업과 소상공인들이 1년간 싸웠다. 중소식품업계가 `마침내' 승리했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생계형적합업종 심의위원회가 `떡국떡·떡볶이떡 제조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은 영세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는 업종과 품목에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제도이다. 떡국떡·떡볶이떡 제조업은 지난 2014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직접적인 진출을 막았다. 이번에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기간이 끝나면서 대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시장 싸움을 벌인 것이다. 정부가 소상공인의 손을 들어줘 앞으로 5년간 대기업은 떡국떡·떡볶이떡 제조업 진출을 포기해야 한다.

떡볶이 공방전이 소상공인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떡볶이 시장을 놓고 중소업자들과 한치 양보없이 싸우는 대기업의 식탐이 새삼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정기간이 끝나는 5년 후 이 싸움은 재연될 것이다. 시골마을 구판장까지 접수한 대기업들이 돈벌이가 될 떡볶이 시장을 포기할 리 없다.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 글로벌 경영이 필요하다는 근사한 논리를 앞세울 것이다.

돈 되는 곳이면 어디 든 빨대를 꽃아야 직성이 풀리는 수익 지상주의. 우리 대기업의 이 DNA는 혁신을 내걸고 닻을 올렸던 신흥 IT기업에도 고스란히 유전됐다. 카카오, 네이버, 쿠팡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단기간에 대기업으로 몸통을 키우고 곳곳에 촉수를 들이밀고 있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이랄까. 카카오는 계열사를 해외법인까지 포함해 118개로 불림으로써 선배 재벌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대리운전, 꽃배달, 미용실 까지 업종을 종횡무진하며 밥그릇을 늘린 결과다.

그들의 혁신은 `소비자 편의와 혜택., 딱 거기까지 가서 멈춘다. 거기서 부터는 택시기사, 요식업자, 미용업주, 모텔업주 등 서민과 소상공인들의 고혈을 먹고 자라는 사이비 혁신이 진행된다. 전 국민이 플랫폼 이용자로 편의를 누리지만, 풀랫폼이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필수적 영업수단이 된 자영업자들에겐 수탈의 상징일 뿐이다. 얼마전 소상공인단체들이 발족한 `쿠팡 시장침탈 저지 전국자영업비상대책위원회'가 이들의 횡포를 웅변한다.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과 불공정이 우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은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규제법, EU는 `디지털시장법'을 제정해 빅테크의 과도한 팽창을 견제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치권에 플랫폼 기업의 폐해가 화두로 등장하고 규제의 시급성이 대두된 것은 늦은 감이 있다. 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혁신의 아이콘에서) 탐욕과 구태의 상징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고,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도 “카카오의 골목상권 진입으로 영세 상인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날을 세웠다.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만큼 당장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과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개정안 등 빅테크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고 소비자를 보호할 법안 처리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재벌기업의 문어발 경영을 무작정 답습한 플랫폼 기업들이 자초한 결과이다.

사실 플랫폼 기업 몇곳만 타깃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대기업이 치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두부와 콩나물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묶어둬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떡볶이를 놓고 소상공인들과 1년간을 싸운 구시대 대기업들의 시장 독식과 불공정도 여전한 만큼 규제 대책은 정교하면서도 종합적이어야 한다. 국민들은 골목상권이나 후리는 빅테크 기업들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해외 빅테크들 처럼 인공지능이나 우주개발 같은 미래산업에 쏟아부울 역량이 없다면 골목대장 역할이라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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