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가을이 오면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1.09.0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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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온다. 말끔하게 수리를 마친 집은 비가와도 이제 걱정이 없다.

나는 이 집에서 44년째 살고 있다. 긴 세월 살면서도 집에 무관심했던 것 같다. 뜨락이 패였고 벽은 언제 칠했는지 기억조차 없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곰팡이가 피었다. 그래도 꿈쩍 않는 주인에게 항의라도 하는 듯 벽 모서리가 툭 하고 떨어졌다. 처마가 좁아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신발이 모두 젖었다.

보다 못해 기술자를 불러 집수리를 시작했다. 볕이 충분히 들도록 비 가림 창을 넓게 올려 달았다. 패이고 허물어진 곳은 모기장처럼 생긴 천을 덧대어 석회 반죽으로 복원했다. 초벌 작업한 곳이 단단히 굳자 볕 좋은 날 큰 롤 붓을 들고 온 아저씨가 외벽을 칠하기 시작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벽은 새집이 되었다. 구석진 곳에 쌓아둔 물건들을 끌어내 정리하자 바람 길이 생겼고, 바람을 따라 들어간 먼지는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되돌아 나오고 있었다.

신혼 때는 큰 살림이 힘들어 작은 셋방이라도 얻어 살림을 나려고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하나 둘 생기고 한솥밥을 먹는 식구가 늘기 시작하면서 분가는 자연스레 좌절되었다.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님은 여러 칸인 방을 하숙생으로 채웠다. 조석(朝夕)으로 교자상 두 개를 붙이고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밥을 먹는 이가 열 명이 넘었다. 집안은 타인들로 활력이 넘쳤고, 저마다 사연을 앞마당에 풀어놓았다. 인근 도시로 대학을 다니는 시동생은 친구와 한방을 쓰는데 두 명의 도시락 준비는 아침 시간을 더욱더 바쁘게 했다. 하숙생 중에는 아버님과 동년배 분들이 많았다. 중학교 교장, 현장 소장 등, 문간방에는 바이올린교습소를 연 선생도 있었다. 오후가 되면 어린이들이 찾아와 교습을 받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듬어지는 음색이 듣기 좋았다.

잡곡밥에 들어갈 보리쌀을 돌절구에 찧는 일은 씩씩한 시동생의 도움이 컸다. 부엌에서 두 계단을 올라 대청마루에 밥상을 나르는 일은 모두가 도왔다. 아궁이의 불씨가 꺼질 줄 모르고 굴뚝을 통해 연기가 하루 세 번 힘차게 솟구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를 졸업한 시동생은 직장을 찾아 떠났다. 하숙생도 줄어 남은 식구는 두리반 상에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을 때가 잦았다.

내가 꿈꾸던 삶이 점점 멀어지고 일이 힘에 부쳐 투덜대는 내 심중을 가장 잘 알아채는 것은 아버님이셨다. “어멈아 차 한 하자꾸나.” 찻잔을 앞에 놓고 앉으면 아버님은 진정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담아 아픔의 언저리를 쿡 찔렀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곪았던 상처가 터지듯 며칠을 가슴앓이하고 나면 후련함으로 다시 힘을 얻곤 했다. 시간과 함께 시부모님도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셨다. 집은 몇 번의 용도 변경을 거치면서 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나와 동행하고 있다.

투명한 채양 위로 구르는 빗방울을 올려다본다. 깔끔해진 집에서 손주들이 찾아오길 기다리지만, 전염병의 심각성으로 가족들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없다. 새로 생긴 길로 넘나드는 햇볕과 바람의 자유가 몹시 부럽다. 가을이 오면 우리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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