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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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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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아닌 왕따
권 일 여 <상산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H가 2000원 안주면 나를 왕따시키겠다고 해서 돈을 줬어요.

눈물을 그렁이며 억울하고 억눌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경화가 안타깝고, 강자에게는 약하게 굴고 약한 친구는 깔보고 돈까지 요구하는 H도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돈 2000원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 진수의 선물을 샀다고 한다.

나는 꾸중을 하고 손바닥을 때렸다. 다행히 그 후 H는 반성하는 것 같았고, 경화를 괴롭히거나 욕하지 않았다. 말수가 너무 없는 경화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가르쳤다.

경화는 6학년에 처음 올라와서도 친구들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어 눈에 띄었다.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장 읽기나 줄줄이 발표하는 것도 끝까지 하지 않고 시간을 끌며 앉아 있었고, 체육시간에는 아무리 친구들이 오라고 해도 오지 않고 우두커니 멀리서 서 있기만 했다. 글씨도 쓰지 않고 못쓴다고 했다.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퉁명하게 째려보면서 대답했다. 그러니 누가 친구가 되려고 가겠는가 경화를 드러나게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외롭게 있기를 고집하는 왕따 아닌 왕따였다.

경화는 친구들이 모두 싫다고 말했다. 친구들로부터 무시를 받아서 그에 대해 방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반 아이들 중에 경화를 무조건 싫어하는 아이는 없었다.

어울리는 일도, 학습하는 일도 손을 놓고 있는 아이를 끌어올리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보다 우리 반 아이들이 경화에게 관심을 갖고 친절하게 대해서 자신감을 갖게 하는 일이 더 급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많은 훈화를 하였다. 다행히 반 아이들은 무시하는 눈빛이 조금씩 사라졌고, 함께하고자 노력했다. 분위기가 편해지니 경화도 조금씩 변화했다. 말수가 전혀 없는 아이도 아니었다. 목소리도 컸고 웃기면 내 귀에 울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편하고 수용적인 분위기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3살 때 고열로 인해 심하게 뇌수막염을 앓았고 촬영 결과 뇌의 반이 뿌옇게 흐려졌다는 것이다. 그후 아주 똑똑하던 아이가 행동이 둔해졌단다. 운동회날 잠깐 찾아온 경화의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다.

남과 다르다고, 좀 부족해 보인다고 일단 싫어하고 꺼려하게 되면 당사자는 자신감이 없어진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능력을 갖춘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만한 자아 존중감을 갖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 같다. 나는 그것을 경화와 우리반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졸업을 시키고 3월이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나를 찾아온 경화, 친구랑 딴 얘기만 늘어놓고 간다.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는 거지 마음속으로 말이야.' 경화가 밝고 자신감있게 세상을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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