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부자모(嚴父慈母)에서 자부자모(慈父慈母)로
엄부자모(嚴父慈母)에서 자부자모(慈父慈母)로
  • 김진균 청주봉명중 교장
  • 승인 2021.09.0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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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균 청주봉명중 교장
김진균 청주봉명중 교장

 

어느 날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가 얼굴이 밝지 않은 모습으로 들어 와서 하는 말이, 약속 장소로 오는 도중 고등학생들 몇 명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은 생활복을 입고 있었으나 어느 학교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전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아이들을 불러 “학교 이름이 쓰여있는 옷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니지 않냐”라며 최소한의 충고를 했는데, 방송을 통해 일탈 행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충고를 하다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가 떠올라, 그냥 못 본척 약속 장소로 왔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며 탄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어른에 대한 공경이 사라졌다. 그 이유는 참된 어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른을 공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된 탓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어른 공경을 이야기하면 혹자는 무슨 꼰대 같은 소리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참된 어른이 없는데 무슨 공경이냐 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참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느냐를 두고 말을 하면 그 논쟁은 끝이 없기에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교육적 차원에서 어른 공경의 필요성을 말해 보고자 한다.

과거에는 가정과 학교에서 어른 공경을 가르쳤고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다. 엄부자모(嚴父慈母)라는 말이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회초리를 들었고 규칙을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어머니는 자애로 감싸 안는 역할을 하여 냉온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것이 시대가 변하여 엄모자부(嚴母慈父)로 바뀌었다가. 이젠 자부자모(慈父慈母)로 변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은 가정에서건 학교에서건 규칙을 가르치고 잘못을 했을 때 엄하게 꾸지람을 하는 사람이 없다. 엄부자모나 엄모자부는 그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구든 잘못을 지적하여 규칙을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하며 칭찬을 말하면서도 잘못을 꾸짖는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칭찬은 반쪽의 성공일 수밖에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이들로 하여금 규칙과 질서를 배울 기회를 박탈할 수 있어 삶을 살아가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프로이트는 질서와 관련된 인성의 요소로 초자아을 강조하였다. 초자아는 다시 개인 초자아와 문화 초자아로 구분되는데 개인 초자아는 가정에서 아버지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른을 공경하고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 문화 초자아를 강조하였다. 가정과 사회가 조화를 이룰 때 아이들은 규칙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게 되며 어른을 공경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점은 안타까움이 크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일기이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예뻐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웃어넘기기엔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어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누구든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규칙을 가르치고 잘한 일은 칭찬하고 잘못된 일은 꾸짖어야 한다. 어른 공경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을 봉건적 사고나 꼰대들의 말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가정에서 개인 초자아를 형성하도록 가르치고, 문화 초자아로서의 사회적 분위기가 규칙을 지키고 어른을 공경하도록 조성될 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잘못을 목격하게 되면 꾸짖고 가르치려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 모두의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브레이크 역할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갈대가 서로에게 기대어 바로 설 수 있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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