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대한 시선
차별에 대한 시선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1.09.0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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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저녁나절, 굽은 산길을 운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냈을 길에 동승자가 있어서 다행이다. 오고 가는 삼십여 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기억을 조금씩 잃어 가는 엄마와 같은 연배인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분의 생각을 듣는다. 문우로 만난 지 이십 년도 더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얘기를 나눈 게 처음이다.

8월 중순부터 음성 예술인을 대상으로 젠더 감수성 교육이 있었다. 페미니즘 동아리를 하면서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이거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첫 시간에는 `우리가 먼저 기르는 젠더 감수성'이었다. 젠더 감수성은 자신과 다른 이성의 입장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감수성을 말한다. 즉, 다른 성별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면 젠더 감수성이 낮다고 말하고, 젠더 감수성이 높다는 것은 성별 이해도도 높고 성차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차별을 볼 수 있어야 평등이 보인다는 강연자의 말이 수업 내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십 초반인 내가 살아온 시절도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무의식적으로 학습 되었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것으로 여겼다.

여성 스스로 가두어 놓은 단단한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나 또한 성역할에 따른 고정관념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살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남성 중심의 언어 사용과 사회적 편견을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차별에 대한 인지도 못하고 살았다.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예민하게 보고 민감성을 키우는 관심과 태도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교육을 받고 오면서 영화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날은 `영화로 보는 성평등'이 주제였다. 자료 첫 장에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2년 전 영화계 여성의 주체성 회복을 위한 국회 토론회로 `한국영화, 사라진 여성을 찾아라'라는 선명한 문구가 걸린 현수막이었다. 영화 제목처럼 보이는 이 문구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2017년 흥행했던 열여섯 편의 영화 포스터를 조각처럼 모아 놓고 여성 부재의 심각한 현실을 보여 주셨다.

정말 그랬다. 그 영화들은 극장이나 TV를 통해 대부분 봤었지만, 흥행으로 이끄는 포스터 속에 남성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간혹 여성이 보여도 주변인에 불과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딸과 함께 영화 보기를 즐겼다는 그분은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화를 보면서 안목이 생긴 거 같다며 그동안 봤던 몇 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강연자는 마지막 마무리를 하면서 `엑시트'라는 영화의 장면 장면을 짧게 보여 주고 영화 속 여성에 대해 말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 여성을 주체적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표현하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를 통해 이제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발견하면서 젠더 감수성에 대한 희망을 보았으리라. 남성에 의해 여성을 위기극복과 윤리적 결단의 주체로서 표현한 `엑시트'는 결말도 각자 개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둘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제 제법 해가 짧아지고,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이다. 어둠이 짙게 내린 산길을 동행하는 그분 덕에 쉬이 올 수 있었다. 오랜 세월 굳어진 사고의 틀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교육을 들으면서 공통의 요소가 비슷해서 다행이다. 사유의 폭이 넓은 동승자에게서 더 많은 것을 얻으며, 차별과 평등을 화두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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