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 온, 스위치 오프
스위치 온, 스위치 오프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09.05 2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출근하기 위해 차에 올라타는 순간 엄마로서의 스위치는 끄고, 직장인으로서의 스위치를 켜야 해요. 그리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순간에는 바꿔서 끄고 키고. 스위치 온오프에 실패하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힘들어지더라고요.”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당연한 말을 진심을 다해서 해주는 그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의 장거리 출퇴근은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어떻게든 버스나 기차에 올라타면 도착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가 있었다. 정말 너무 피곤하면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그저 풍경을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남들은 차도 없이 다니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그랬지만, 대중교통은 나의 일상이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나의 생활 루틴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운전을 시작하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차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는 했지만 초보운전인 나에게 늘 같은 동선이어도 하루하루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도로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매일매일 피로감이 더해갔다.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만 인지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결국 직장인으로서의 스위치를 끄지 못하고 엄한 아이들에게 감정을 쏟아내던 그날, 엄청나게 큰일이 일어나서 참지 못하고 화를 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물을 먹다가 조금 흘렸고, 밥을 다 먹고 고른 아이스크림이 하필 크림이 잔뜩 들어간 아이스크림이어서 녹는 속도가 더 빨랐을 뿐이었다. 그런데 평소처럼 수건을 꺼내 닦아주다가 내가 갑자기 차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못 먹어!”

안쓰러운 나를 위해 합리화를 해보자면 그날 출근길에 거북이처럼 달리고 있는 내 앞으로 화물차가 갑자기 칼치기를 했고, 돈을 받아야 할 거래업체는 여전히 전화를 안 받았으며,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퇴근길부터 너무 배가 고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에 우리 아이들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스트레스를 차에서 내리는 순간 떨쳐내지 못한 내가 하루 종일 기관에서 엄마 없이 지내다가 드디어 그립고 그립던 엄마를 만난 아이들에게 폭발시켜버린 것이다. 아이들의 놀란 눈을 마주하고서야 엄마 스위치를 급하게 켰지만 그날의 죄책감 자괴감은 여전히 무겁게 나를 짓누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옷매무새뿐만 아니라 감정 또한 차분히 매만지려 노력한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동료가 내가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부터 끌고 온 불행한 감정에 상처받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그 누군가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