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추석에 송편을 먹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추석에 송편을 먹었을까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硏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21.09.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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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가을과 함께 다가오는 명절이 있으니, 바로 추석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선 추석 선물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고, 어머니들은 때늦은 가을장마에 추석 차례상에 올릴 과일 값을 걱정하곤 한다. 더욱이 요즘은 온 가족이 함께 만나는 것이 어려운 시절이기에, 더더욱 추석의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역사적으로 추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지는 분명치 않지만, 『삼국사기』 중 7~8월 부녀자들의 길쌈 겨루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유리왕 9년인 32년 도읍 안의 부녀자들을 둘로 나누어 한 달간 길쌈 겨루기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인 8월 15일에 길쌈을 많이 한 승자를 정하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밥을 장만하여 대접하였으니, 이를 가배(嘉俳)라 하였다. 추석의 또 다른 이름인 “한가위” 중 가위가 바로 이 “가배”에서 유래한 것이다.

“추석”이라고 하면 많은 것이 연상되지만, 그중 송편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직접 송편을 빚는 집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차례상에는 으레 송편이 올라간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송편이 추석에 먹었던 음식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성과에 따르면 송편이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었다. 물론 송편은 송병(松餠), 엽발(葉?)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았던 음식이다. 문헌 기록 중 송편이 등장하는 것은 17세기부터, 『성소부부고』, 『상촌집』, <농가월령가> 등 다양한 문헌자료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 당시 송편은 추석에 특화된 음식이 아니었다. 봄철 간식으로 먹기도 했고, 여름철 농사 일꾼들을 격려하는 음식이기도 했으며, 혹은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민간신앙의 제물이기도 하였다. 이런 송편이 추석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건은 현대에 와서이다. 2018년 김용갑이 쓴 「추석 대표 음식으로서 송편의 발달 배경」이란 논문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송편이 추석 대표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1970년 이후였다. 조선 후기 작품인 <농가월령가>나 서울지방 전승민요인 <떡타령> 등에 `오려송편'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는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18세기 말에 쓰인 『경도잡지』에서 송편은 2월 1일 머슴날에 만들어 나누어 주는 음식이었으며, 충북 청원, 영동 지역에서는 6월 15일 유두절에 송편과 밀전병을 준비해 일꾼들을 달래고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송편은 전국적으로 추석 대표 음식이 되었을까? 앞의 논문 저자인 김용갑은 그 시점을 통일벼의 개발로 쌀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한 1970년대로 보았다. 통일벼 보급 이전에는 추석이 지나고 난 10월쯤 쌀이 수확되었다. 햇곡이 나오지 않아 1년 중 가장 궁핍한 시기에 많은 양의 쌀이 들어가는 송편을 백성들이 편히 만들어 먹기는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벼의 개발로 추석 즈음에 햇곡을 수학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송편이 추석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송편이 추석 음식으로 인식된 데에는 1970년대 텔레비전의 보급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2000년대 초 전국 각 지역에서 이루어진 민속조사로 뒷받침된다. 조사에 따르면 70년대 이전에는 추석 때 송편이 아닌 다른 떡을 만들거나 아예 떡을 만들지 않았었는데, TV를 보고 추석 때 송편을 빚게 되었다는 각지 어르신들의 증언이 남아있다. 물론 이 한편의 논문으로 송편의 역사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풍습들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변화하여, 기억 속에서 잊혀지거나 혹은 변화된 모습으로 기억된다. 물론 무조건 원래의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며, 변화된 풍습도 존중되어야 할 우리의 역사이다. 다만, 그 변화의 과정을 기억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올 추석 송편을 먹으며, 한 번쯤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부터 추석에 송편을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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