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1.09.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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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아스퍼거 증후군인 제자가 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기가 일쑤였다. 아이는 소리에 아주 예민했다. 쉬는 시간이며 점심시간, 청소 시간에 아이들이 웃고 장난치고 떠드는 소리를 참기 힘들어했다.

특히 수업 시작종이 치고 나면 조용히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고, 반 친구들은 그런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고즈음 인기 있던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들으며 아이돌 사진을 교실 벽에 붙이는 몇몇 아이들에게 아이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아이는 벽에 붙은 아이돌 사진을 떼어 찢어버렸고 결국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담임인 나와 우리 반 아이들 모두 둘러앉아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긴 이야기 끝에 우리는 아이가 아이돌 그룹을 싫어하게 된 진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취소되자 팬들이 세월호 탓을 하는 모습에 실망했고, 그 이후부터 그룹의 팬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반 아이들은 아이의 생각과 분노를 알게 되었고 아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친구들이 들어준 것이 처음이라며 눈물을 훔쳐냈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2018년,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의회 앞에 앉아 시위를 하는 열 다섯살 소녀가 있었다. 스웨덴 선거에서 기후 위기를 핵심 의제로 올릴 것을 요구하는 그레타 툰베리의 시위다. 툰베리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라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가 아닌 탄소 배출이 없는 태양열 친환경 보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유엔 본부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그레타 툰베리의 행보는 전 세계 700만 명 이상이 동참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로 이어졌다. 106개국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기후 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당사자로서 서로 연대하며 정부를 비롯한 기성세대에게 적극적인 기후 위기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그레타 툰베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특정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그 문제에 집중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또 자신의 생각을 감추는 대신 표출하고 문제를 지적한다. 툰베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덕분에 한 눈 팔지 않고 환경운동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타 툰베리의 1년간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I Am Greta'에서 툰베리는 “가끔은 모든 사람에게 아스퍼거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울먹인다.

그레타 툰베리는 환경문제와 지금의 위기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체감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 어쩌면 툰베리의 아스퍼거 증후군은 환경에 더욱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용기의 증상이 아닐까? 툰베리의 말대로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 때문에 자연과 우리의 관계는 벌써 깨져버렸는지 모른다. 관계는 회복할 수 있다. 아니, 회복해야만 한다. 자연의 소리를 듣기 위해 집중하고, 바로잡기 위해 행동할 때 자연과의 관계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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