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내 인생
앞으로의 내 인생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9.0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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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교수가 되었을 때 기뻤다. 교수가 되고 나서 가장 황당했던 건 처음 연구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컴퓨터, 책상, 의자, 캐비닛, 전화 하나 딸린 방 하나 주고 끝이다. 누구도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았다. 공부는 어떻게 하고 학생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며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하고 사람은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조직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아무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연구실에 최소한의 가구만 주고 내팽개친 느낌이었다.

공부는 해왔으니까 계속 하면 되고 강의도 처음이 아니니 그럭저럭 문제없이 헤쳐나갔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다. 그럼에도 연구실에 들어서면 혼자이다. 아무도 건드리는 사람 없고,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무슨 일이 생기든 연구실에 들어가면 무풍지대다. 외롭기는 하지만 그걸 잘 견뎌내면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가 보장된다.

이렇게 홀로 살다 보면 대체로 외골수가 되기 쉽다. 학문, 특히 인문학은 혼자 한다. 요즘에는 융합, 통섭이 트렌드라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공동연구를 하기도 하지만 깊은 사색은 남들과 같이 하지 않는다. 자기 사색의 결과를 다른 사람과 토론하면서 단련하는 건 필요하지만 처음 무언가 길어 올릴 때는 홀로 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늘 공부만 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서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지내는 게 정상이다. 사회에서는 싸워도 어울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교수라는 직업은 싸우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다. 어울리지 않으면 된다. 연구실에 들어가 자기 연구만 하면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서로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누구라도 비위를 거스르면 그걸로 끝이다. 안 보고도 살 수 있으니까. 자연히 사람이 모가 나게 마련이다. 고집 세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국립대 교수는 총장도 우습게 안다.

나는 신임 교수가 오면 해주는 말이 있다. 정신병원 가면 증상이 심하지 않은 사람은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한다. 조금 심하면 두세 명 정도로 줄어들고, 증상이 아주 심하면 독방에서 생활한다. 교수들에게 왜 독방을 줄까? 그럼 대체로 알아듣는다. 왜? 교수들 밑에서 공부해봤기 때문에. 점잖지만 까다롭고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해서 아니라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뒤도 안 돌아보는 사람 밑에서 훈련을 받았으니 당연히 안다. 그래서 얘기를 들을 당시에는 아~ 그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고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면 그도 교수 멘탈이 된다.

20여 년 일자리를 떠났다. 이제 내가 왕이었던 연구실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에서는 내가 왕이 아니다. 이걸 망각하면 사단이 생긴다. 친구 아버지가 장성이었다. 군인이 득세하던 시절 별 세 개까지 달았으니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만한 권력자였다. 당연히 모든 걸 아래에서 다 해주었다. 전화 걸기, 운전, 빨래, 청소, 스케줄 관리 등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전역을 하고 나서 스스로 적응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몸에 밴 습관이 고쳐지지 않았다. 부인을 부하처럼 부리니 부인이 못 참고 집을 나가버렸다.

교수는 군림하는 직업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이 꽤 있기는 하지만 연구실에서 습득한 꼰대 기질을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다. 우리 집사람은 집을 나가지 않고 나를 쫓아낼 것이 분명하다. 쫓겨나지 않아야 한다. 취미를 살려 요리하고 반찬 해서 나도 먹고 집사람도 먹여야 한다. 그럼 내가 없으면 집사람이 살기 어렵다. 원래 균형잡힌 것이 인생이다. 들볶으면서 살았다면 들볶이면서 살게 되어 있는 게 인생이다. 시키면서 살았다면 앞으로는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것이 공평하다. 그게 싫다면? 내가 산으로 가야지. 입산하려면 반찬 해 놓고 가란다. 어제도 반찬 해놓고 왔다.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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