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세 번째 이야기
텃밭일기-세 번째 이야기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1.08.3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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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모두를 힘들게 했던 폭염도 입추와 말복이 지나가니 거짓말처럼 바람의 결에 제법 선선한 기운이 느껴졌다. 더위가 수그러드니 좀 살만해지고 햇살이 누그러진다는 처서만 지나면 잡초도 덜 자란다고 하니 잡초와의 전쟁도 막을 내리려나 싶었다. 서서히 가을맞이 준비를 해도 될 것 같아 설??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풍을 동반한 가을장마가 불청객으로 찾아와 내 마음을 비웃는다. 자연의 오묘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순간마다 인간이란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자각하며 한껏 몸을 낮춰 겸허하게 살아야지 생각하지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망각하고 자연의 섭리를 터득한 양 고개를 세우고 오만하다. 그게 인간의 고질적인 습성인 듯하다.
올여름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와 무더위를 견디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가게와 텃밭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가게에서는 튀김기의 뜨거운 열기에 헉헉대며 일을 하고 텃밭에서는 뽑아내고 돌아서면 또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와 전쟁을 했다. 작년까지 언덕 아래 작은 텃밭을 가꿀 때만 해도 농사일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언덕 위 넓은 밭에 농사를 짓던 어르신들이 건강 악화로 밑거름까지 뿌려둔 밭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밭을 놀릴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니 주변에서 심어만 놓으면 된다고 콩하고 들깨를 심으라고 권했다. 심어만 놓으면 된다는 말에 혹해 밭에 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건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콩 씨를 심고 나니 어떻게 알았는지 새들이 날아들어 콩 심은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내 씨를 쪼아 먹었다. 그렇게 새들의 배를 불려주고 무사하게 살아남은 콩들이 기특하게 자라나니 이번에는 무성하게 자라난 콩잎을 잘라내란다. 순지르기를 해줘야 콩이 많이 열린다며 순 치는 걸 알려주는데 인정사정이 없다. 가지만 남겨놓고 앙상하게 싹둑싹둑 잘라낸다. 그렇게 잘라 버릴 거면 왜 키웠는지 수북하게 잘려나간 순들을 바라보니 어이가 없었다. 들깨도 마찬가지였다. 농사일은 어느 것 하나 우리 부부에게는 수월한 것이 없었다.
손이 덜 가는 농작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어디에도 심어만 놓으면 되는 농작물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농사일은 결코 만만하게도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될 터였다. 작은 텃밭에 야채를 조금씩 가꾸며 농사일을 해볼 만한 일이라 한껏 오만해졌던 나의 치기가 올여름 농사일에 무참하게 꺾이고 말았다.
무모하게 시작한 농사를 지으며 낱알 한 톨 한 톨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각각 다르고 땅이 가지고 있는 힘을 나름대로 어렴풋 알게 되었다 생각하지만 이 또한 나의 오만일터였다. 씨앗을 품은 대지와 자연은 오묘하고 신비하지만 인간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부지런하게 일하며 땀을 흘리는 사람들의 몫일 터였다.
요즘 많은 사람이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농과 귀촌을 소망한다고 한다. 그러나 귀농과 귀촌이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도 않거니와 여유와 낭만만이 가득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낭만이 가득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소망하며 귀촌을 준비 중이지만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쓰디쓴 경험으로 체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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