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과 달밤
연꽃과 달밤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8.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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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피어나는 꽃이 바로 연꽃이다.

뿌리는 비록 진흙에 박혀 있지만, 그 뿌리의 기운에 의지해 피어난 꽃은 진흙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세상에서 가장 깔끔한 모습이 너저분한 진흙 속에서 생기는 것만으로 연꽃은 극적인 존재이기에 충분하다.

또한 연꽃은 무더위에 지친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생기가 도는 여름형 꽃으로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는 이만한 게 또 없을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서거정(徐居正)은 한여름 저녁에 만난 연꽃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연꽃 마당에 달이 뜨니(蓮堂月夜)



晩坐陂塘上(만좌피당상) 날 저물어 못 가에 앉으니



荷花未半開(하화미반개) 연꽃은 아직 반도 피지를 않았네



月從吟夜好(월종음야호) 달이 읊조리는 밤을 따라오니 좋고



風送故人來(풍송고인래) 바람은 벗을 보내오게 하네





시인의 여름 마당에는 연꽃이 한창이다. 무더위에 마당 나서기도 무서운 여름이지만, 그럴수록 연꽃은 도리어 생기가 넘쳐난다. 시인은 그런 연꽃에 끌리어 저녁 무렵에 마당으로 나섰다.

이윽고 뜨겁던 해는 지고 연꽃 위 하늘에 반가운 손님이 고개를 내민다. 바로 달이었다. 연꽃의 선명한 이미지와 달빛의 은은함이 이뤄 내는 앙상블은 시인으로 하여금 여름 더위를 잊게 하고도 남을 만큼 환상적이다. 그런데 연꽃은 아직 반쯤 밖에 피질 안않다. 웬만하면 무더위에 시들어 버릴 테지만, 아직 다 피지도 않은 연꽃은 과연 여름의 지배자이다.

생기발랄한 연꽃과 은은하고 차가운 달빛이 시인의 감흥을 일으키니, 그 어렵던 시 짓기가 어느 때보다도 수월해질 법도 하다. 연꽃과 달빛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바람까지 나섰다. 시원한 바람을 쐬자 잊고 지냈던 친구 생각이 간절해졌던 것이다.

겨울에 강한 것이 소나무라면, 여름에 성한 것은 단연 연꽃이다. 무더위에 지쳤을 때, 연꽃 핀 곳을 찾는 것만으로 보약을 얻을 수도 있다. 달이 은은하게 뜬 밤이라면 그 약효는 배가될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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