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할 자격부터 갖추자
비판할 자격부터 갖추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8.2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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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비판하는 사람이 자격을 갖췄을 때 그 비판은 효력을 갖는다. 식상한 얘기지만, 똥칠을 한 개가 검불 묻은 개를 보고 더럽다며 짖어대는 것을 비판이라 할 수는 없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공격하는 낯두꺼운 행태가 판을 치는 곳이 정치 공간이다. 그곳의 몰염치에서 비롯된 말이 바로 `내로남불'이다.

황교안 전 총리가 강성국 법무부 차관의 이른바 `우산 의전'을 호되게 비판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총리 시절 과잉 의전으로 구설에 올랐던 전력이 재론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6년 서울역의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타고 들어와 KTX에 탑승했다. 그가 열차에 오르는 동안 경호요원들이 일부 승객의 이동을 통제하기도 해 `황제 의전' 논란에 휩싸였다. 그해 KTX 오송역 버스정류장에서는 경찰이 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쫓아내고 총리 의전차량 4대를 주차시켰다가 갑질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우산을 든 법무부 직원의 무릎 꿇은 의전을 두고 그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반론을 샀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도 같은 상황에 처했다. 윤 의원은 “나는 세입자입니다”라는 울림 있는 화두를 시작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혹독하고 집요하게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러나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휘말림으로써 그가 여권을 향해 쏟아낸 온갖 비판은 무색해졌다. 부친이 노년에 농사를 짓기 위해 토지를 매입했다는 해명도 부친 스스로 “투자가 목적이었다”고 밝힘에 따라 부질없게 됐다. 나아가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 취득한 내부정보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에서 행정관을 지냈던 제부(동생의 남편)도 입질에 오르고 있다.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한 줌도 부끄러울 게 없다고 했던 호언이 허언이 되면서 국민을 기만했다는 혐의도 벗기 어렵게 생겼다. 따라서 그의 의원직 사퇴는 당연한 결정이요 귀결이다.

윤 의원을 향해 민주당이 연일 퍼붓는 원색적 비난 역시 자격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권은 “탐욕스런 투기꾼의 딸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윤 의원을 위선자라고 맹공하고 있다. 그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스스로 수사 의뢰를 한 데 대해서도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쇼라고 매도하며 탈당부터 하라고 채근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6월 권익위 조사에서 투기 의혹이 드러난 의원 12명에 대해 제명과 탈당을 권유하는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힘없는 비례대표 의원 2명만 제명됐을 뿐 나머지 의원 10명은 여전히 당적을 고수하고 있다. 처리 결과만 놓고 볼 때 국민의힘보다 나을 게 없다. 당당하게 국민의힘과 윤 의원을 비판할 입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8년 지인을 성추행했다는 미투 의혹이 제기되자 바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두 달 만에 말을 바꾸고 여의도에 슬그머니 눌러앉았다. 그리고는 “당과 국민의 요구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애꿎은 국민까지 동원해 번복을 합리화하자 낯두꺼운 행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쇼'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행여 윤 의원이 민병두식 쇼를 재연할까 봐 “쇼 하지말라”고 압박하는 것은 아닌지 민주당에 묻고 싶다. 쇼를 운운할 자격은 있는지도 자문하길 바란다. 권익위가 투기 의혹을 제기한 12명을 졸속 심의해 윤 의원 등 6명에게 면죄부를 줬던 국민의힘도 입을 열 자격이 없다. 여야에 상대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허물부터 돌아보는 최소한의 양식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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