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있는 똥개
족보 있는 똥개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8.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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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오로지 직진인 손자 녀석은 앞뒤 좌를 살필 줄도 모르고 언덕, 낭떠러지기며 비탈길을 막무가내로 내닫는다. 머리를 앞으로 잔뜩 숙여 내밀고는 뒤뚱뒤뚱 무조건 돌진이다. 나뭇가지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이내 일어나 또다시 달린다. 걷는 법이 없다. 물가에 내 놓은 아이란 말이 있듯 항상 조마조마하다. 그러니 팔꿈치와 무릎은 늘 상처가 나 있다. 전에 산악 할 때 사용하던 아대를 생각하고 팔꿈치보호대와 무릎보호대를 채워 주지만 답답한지 금세 벗겨버린다. 반대로 손녀는 겁도 많고 아주 세심하다. 만사에 조심성이 있어 아는 것도 일단 의심을 품고 다시 한 번 확인해 본 뒤 행동한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연못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노루망으로 펜스를 쳐놓긴 했지만, 물가로 들어간다고 안달이 났다. 수심이 1미터 50은 실히 되는지라 겁이 났으나 물의 깊이 따위는 아이들에겐 걱정거리가 아니다. 장난감으로 낚싯대를 가지고 놀아본 아이들은 낚싯대를 보자 너나없이 달려들어 서로 먼저 고기를 잡겠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그래도 누나라고 큰아이가 먼저 양보를 한다. 옥수수를 달아주자 채 5분도 안 되어 찌가 솟는가 싶더니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낚싯대마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아이를 안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아이까지 끌려들어 갈 뻔했다. 아마도 잉어나 향어 같은 대어가 물었던 모양이다. 이번엔 큰아이가 낚싯대를 잡았다. 역시 금세 미끼를 물었는데 뼘치 붕어다. 몇 번 경험이 있는지라 여유 있게 끌어낸 다음 보란 듯이 자랑을 했다.

연못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개구리들이 탐방 탐방 연실 연못으로 뛰어들고 풀섶에서는 메뚜기와 여치, 방아개비, 때까치, 베짱이, 팥중이 등이 튀어 올랐다. 연못 모서리에서 아침에 된장을 미끼로 던져 놓았던 어망을 살펴보기로 했다. 큰아이가 어망이 묶여 있는 줄을 당겼다. 잡고기들이 달박달박하게 들어가 있다. 아이들이 “와!” 환호를 한다. 송사리, 피라미, 미꾸라지, 새우, 동자개, 중투라지, 물방개, 가재, 소금쟁이 등 온갖 잡어들이 잔뜩 들어가 있다. 아이는 집 어항에 갔다 넣자고 떼를 쓴다.

오후가 되자 땅콩 밭 가득히 고추잠자리 떼가 비행을 한다. 장관이다.

`고추잠자리/ 깊어가는 늦여름쯤 초가을은 한가롭고 / 푸름이 발갛게 익어가는 담 너머 고추밭 / 어디서 나타났을까 텃밭 가득 붉은 군단'

잠자리를 잡아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 하늘 높이 나는 잠자리를 무슨 수로 잡아줄까? 생각하다가 잠자리 대신 집게벌레를 잡아주기로 하고 참나무 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일명 사슴벌레라고도 하는 집게벌레는 참나무 밑을 파면 나온다. 집게벌레며 풍뎅이들은 상처 난 참나무에서 나오는 진한 수액의 진을 좋아한다. 참나무 밑동을 파지 않았는데도 집게벌레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채집통이 없었으므로 헌 새장에다 잡아넣었는데 작은놈들은 철망을 비집고 나와 아이들을 실망시켰다.

갑자기 큰아이가 “할아버지. 응아 마려워” 한다. 얼른 바지를 내려 주었지만 거부를 했다. 누가 보는 이도 없고 온 천지가 자연 화장실인데 아이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칭얼거렸다. 꽤 먼 거리를 달려가 간이 화장실에 들렀지만 역시 무섭다고 거부를 한다. 할 수 없이 세숫대야에 판자를 걸치고 화장지를 얹은 다음에야 볼일을 봤다. 그 똥을 진돗개 새끼 까미가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얼마나 황당해하던지…. 아무리 혈통서가 있으면 뭣할까. 똥 먹으면 똥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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