댑싸리 추억
댑싸리 추억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8.2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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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다리 통증 때문에 달리는 대신 빨리 걸은 지가 꽤 되었다. 덕분에 달릴 때는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고 했던가?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댑싸리, 어릴 적 마당 가에 다복하게 자라던 댑싸리가 요즘 내 눈에 드는 바로 그것이다.

댑싸리는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답싸리라는 방언으로 불렸는데, 연둣빛 줄기가 얼마나 다복한지, 댑싸리라는 이름보다는 답싸리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누가 심었는지, 산책 다니는 길 가 화분에 연둣빛 댑싸리가 소복하다. 도심 한복판에 댑싸리라니... 믿기지 않지만, 누군가의 추억 덕분인지, 도시 산책길에서 마주하는 댑싸리 덕분에 마음은 어릴 적 고향집 마당으로 달려간다.

시골집 마당에는 여름이면 어김없이 댑싸리가 그 다복하게 자랐다. 마당 가에 저절로 난 것을 뽑아 버리지 않고, 주변 풀들을 정리해 가며 정성을 들이면 이때쯤 댑싸리 줄기는 가장 풍성하게 뻗는다. 댑싸리는 68~150㎝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대체로 1m 안팎으로 혹은 그보다 작게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단단한 줄기에 여린 잎들이 촘촘하게 붙은 탓에 바람이라도 불면 작은 잎들이 조밀조밀 풍성하게 흔들린다. 한여름에 모든 식물들이 진한 초록을 자랑할 때도 댑싸리만큼은 초록보다는 연둣빛을 자랑한다. 그 연둣빛 덕분에 더 싱그럽고, 수형이 원래 둥글어서 멀리서 보면 연둣빛 공 같아 보이기도 했다. 찬바람이 불면 댑싸리를 잘라 두었다가 마른 줄기로 빗자루를 엮었는데, 자연에서 절로 난 풀이 생활 속 쓰임 받는 물건이 되는 것은 시골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7월 영국 한 교육지의 보도에 따르면 영국 교육부는 2030년까지 200만 개의 전문적인 친환경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성인을 위한 `녹색 기술 교육과정(green skills programmes)'을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모든 성인에게 친환경 직종으로 진출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면서 근로자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데 특히 기존 도제제도를 보다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정비하고, 최근 등장하는 친환경 직종에 대한 신규 도제제도를 만들어가는 `녹색 도제제도(green apprenticeships)'가 포함되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의 기능 훈련소(skills boot camps)에서는 최대 16주까지 진행되는 성인연수과정을 무상으로, 탄력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기존 일자리에서 은퇴하는 시기가 빨라지면서 새로운 일자리 찾기 역시 은퇴를 앞둔 시니어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또한 지자체나 단체에서 운영하는 정원 가꾸기, 목공, 흙집 짓기 등 친환경적인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인기도 많다고 한다. 이런 차에 영국처럼 친환경 성인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국가적 시스템을 정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릴 적 아버지에게도 댑싸리 빗자루 엮는 것은 가을 소일 중 하나였다. 집집마다 댑싸리 빗자루 엮는 솜씨는 다 달랐는데 멀리서도 우리 아버지 빗자루는 알아볼 수 있었다. 댑싸리 생긴 모양을 잘 이용한 적당한 길이와 맵시 나는 모양, 쓰는 사람을 생각한 꼭 맞는 손잡이 두께까지... 자연이 준 소산을 잘 다듬어 쓸모 있게 사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놓기, 아버지의 물건들은 늘 그랬다.

도시 한가운데 화분에 키워지는 연둣빛 댑싸리를 보며, 자연, 자연에서 온 우리 생활의 작은 물건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쓰는 것이 당연했던 우리 부모들을 떠올려 본다. 참 좋은 시절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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