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
가을장마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8.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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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문장(文章)은 곤궁에서 온다. 한용운 수필집의 <고학생>이라는 글에서 본 문구다. 한용운 선생은 글 첫머리를 위인은 세상에 나올 때 먼저 궁곤으로써 그 뜻을 이루려 노력하며 애썼다는 말로 시작을 한다. 이는 몸이 가난한 것은 불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빈곤한 자신의 생활을 원망한다.

한용운 선생의 <고학생>이라는 글을 읽고 나니 불현듯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중학교를 마친 나는 사립 고등학교를 들어갔지만 우리 집 형편으로는 수업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청주에서 장학금으로 대학교에 다니던 오빠와 상의한 끝에 일하며 공부를 할 수 있는 산업체 학교로 전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나도 부모님을 꽤나 원망을 했지 싶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가야 하니 정말 고단한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돈을 벌어 부모님 용돈을 드릴 수 있어 때때로 행복한 순간도 많았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면서도 나는 학업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그 열망은 이루어졌다. 결혼을 하고 10년을 훌쩍 넘겨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가끔은 내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어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꿈꾸는 학자가 되어 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의 학업 성적은 높은 편이 아니었다. 아니 낮은 편에 더 가까웠다. 고등학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결혼을 하고 10년이 지난 후에 시작한 학업 성적이 높았다.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성적에 대한 질책과 강요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공부 좀 하라는 성화가 없어서였을까. 학과의 임원을 맡아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학업 성적은 정말 좋았다. 힘든 시집살이와 육아에 지친 나에게 돌파구가 필요했다. 얼굴은 빈혈과 황달로 노랗게 변해 갔고,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어쩌면 대학은 나를 찾는 길이었지 싶다.

삼일 째 내리던 비가 잠시 소강 중이다. 빗물에 씻긴 마당의 자갈들이 깨끗하다. 그 위로 군데군데 풀들이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비가 왔으니 며칠 새 얼마나 더 세를 키웠을까. 땅빈대 풀, 어찌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하다.

뽑아도 뽑아도 그 수가 줄지 않는 걸 보면 염치가 없는 듯도 하지만 그래도 왠지 안쓰럽게 느껴지는 풀이다.

이 비가 그치면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이라고 한다. 지긋지긋하던 더위도 물러가고 이제 소슬바람이 불어 올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조바심을 내고 여름이 지겹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던가. 어쩌면 그런 지긋한 여름이 있어 가을을 반갑게 반기는지도 모르겠다.

`고통은 차안(죽음과 삶의 세계)이요 쾌락은 피안이다. 차안에서 닻줄을 풀지 아니하고 피안에 도달하는 길은 없다. 고통은 문이요. 쾌락은 당(堂)이다.' 한용운 수필집의 <고통과 쾌락>에 나오는 문구가 지금 우리들의 삶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모든 성공의 이면에는 고통의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지금 세계는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전쟁과 자연재해, 그리고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말이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 순간, 모두가 어깨를 겯고 꿋꿋이 버텨나간다면 언젠가는 피안의 시간도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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