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쉼터
오리 쉼터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1.08.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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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뙤약볕 아래 열일 하는 오리들이 있었다. 의림지 뜰에 친환경 농법으로 미꾸라지, 메기, 우렁이, 오리를 논에 넣어 농사를 짓는 곳이다. 무덥던 지난여름 어느 날, 산책길에 지나다 보니 논 가장자리 논둑에 천막이 처져있고 `오리 쉼터'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오리를 생각하는 농부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뭉클했다.

오리들만 차별 대우를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메기, 미꾸라지, 우렁이는 물속에서 살아가는 것들이니 땅 위에 올라올 일이 없어 따로 쉼터가 필요치 않을 터이다. 반면, 오리들은 물에서도 생활하지만 때론 땅 위에 나와서 돌아다니기도 하니 불볕더위를 피하라고 쉼터를 만들어 준 것이다. 농부들이 오리를 일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며 그들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친환경 농법에 대한 안내문도 있었다. 친환경 농법은 이들이 논바닥을 헤집고 흙탕물을 일으키며 돌아다녀 잡초가 자라지 못하며 벼 뿌리에 산소를 공급해 뿌리를 튼튼하게 해 준다고 한다. 해충을 잡아먹고 이들의 배설물들은 토양에 거름이 된다 하니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농사를 짓는 농법이다. 수질 오염을 줄이고 토양을 살린다니 이보다 좋은 농법이 있을까 싶다.

이는 농부의 믿음이 이룬 결과가 아닐까. 유년시절 시골집에는 언제나 닭장에 몇 마리 닭들이 있었다. 따뜻한 봄, 암탉이 달걀을 품어 병아리가 부화하면 닭을 마당에 풀어놓았다. 암탉은 노란 병아리들을 몰고 마당가나 처마 밑, 울타리나 담장 밑만 헤집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집 앞 너른 밭에 마음대로 들어가 애써 심어놓은 고추 모종이나 채마 밭에 야채들을 가리지 않고 쪼아댔다. 닭들을 마음껏 놓아 기르지를 못했던 기억이 있던 터라 오리나 우렁이 등이 벼를 헤치지 않는지 의문이 갔었다.

처음 이 농법을 시작한 사람은 누군지 모르지만 이들이 심어놓은 벼를 헤치지 않는다는 굳건한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는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믿음이 오늘날 이렇게 친환경 농법을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지 않았나 싶다.

동물과 사람과의 사이에 신뢰와 사랑은 종종 볼 수 있다. 사냥견이 주인에게 충성하는 모습도 서로 간에 신뢰가 없으면 볼 수 없는 일이다. 시골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 집에는 들 고양이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형제 중에 시누이 하나가 유독 고양이를 챙기고 사료를 사다놓고 집에 머물 때는 그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오래된 창고에 쓰지 않는 농자재를 쌓아두었던 헛간 같은 곳에서 고물고물한 새끼를 낳아 기르는 모습을 보고 어르고 달래며 소통을 한다.

시누이는 가끔 집에 머물지만 고양이는 이를 기억하고 생쥐를 잡아 어머니 앞에 보란 듯이 내놓으며 고마움을 그렇게 전하는 듯하다. 오리들 또한 농부의 믿음에 힘입어 벼 모종은 보호하고 해충이나 잡초를 없애는데 온갖 힘을 쏟고 농부는 그 보답으로 쉼터까지 제공하지 않았나 싶다.

오리 쉼터에 가보았다. 쉬고 있는 오리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발걸음 했지만 한발 늦은 듯하다. 오리들이 일했던 논에 벼들을 바라보니 어느새 도화(稻花)를 조롱조롱 달고 벼 이삭이 살을 찌우고 있었다. 초여름부터 논에서 일하던 오리들은 임무를 완수하고 이미 철수를 하였다. 지난여름 무덥던 여름날 오리, 메기, 미꾸라지, 우렁이 그들의 노고가 의림지 뜰에서 알알이 영글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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