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으로 만든 햄버거
옷으로 만든 햄버거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08.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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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오늘도 내 손가락은 결제버튼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동동거린다. “역시즌 세일! 우리 아이를 패션피플로 만들어보세요!”라고 핸드폰 화면에 당당하게 뜬 팝업 광고에 홀랑 넘어가 버린 것이다. 처서가 다가오니 선선해진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지만, 아직도 한낮에는 여름의 태양이 기세를 펼치고 있는 이 시즌에 겨울 점퍼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모양이라니, 우습기가 짝이 없다. 하지만 나처럼 월급쟁이에게 “파격세일”“오늘 단 하루 특가!”와 같은 상품의 낮은 가격을 앞세운 판매전략은 정말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 중의 유혹이다.

더구나 그 소비의 대상이 아이들이면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지구 밖 우주에 던져진 지 오래.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색과 무늬에 홀려 미친 듯이 장바구니에 담는 내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아이의 옷장에는 더 이상 옷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꽉꽉 채워져 있는데 “이건 예쁘니까, 이건 싸니까, 이걸 입으면 왠지 우리 아이도 광고 속 인형같이 생긴 아이처럼 될 것 같아서”등등의 이유로 나의 막무가내 소비를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사진 한 장이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바로 김은하 작가의 `햄버거 콜라주'작품을 담은 사진이었다.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고도 모자라 부피도 어마어마한 이 햄버거는 언뜻 보면 진짜 햄버거를 보는듯한 착각이 든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햄버거의 안팎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옷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패스트푸드들이 작가에게 남기는 것, 안 맞아서 못 입게 되는 옷들”이라고 설명했다. 작가가 무분별한 패스트푸드 소비에 경고등을 켜고 싶었는지, 아니면 나날이 쌓여가는 의류폐기물에 경각심을 일으키고 싶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녀의 작품으로 인해 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거리에서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는 우리 아이 또래 아이들을 보면 사주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오지만, 당장의 쾌락을 위해 우리 아이의 미래를 망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리려고도 노력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주에서 보면 먼지 같은 존재감을 가진 내가 생각의 변화를 겪었다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매번 갈대같이 흔들리는 내게 지인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이와 같은 실천이 의미가 없다면 과연 무엇이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이런 행동을 할 때는 지극히 이기적으로 생각해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식으로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 말을 들은 후 나도 한없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정말 큰 대의를 가지고 세상에 소리칠 만큼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품을 만큼 이타적인 사람도 아니니 그저 나 자신을 위해, 조금 더 나아가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첫째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입을 옷이 없어, 늘 똑같은 드레스고 늘 똑같은 원피스야”아이의 슬픈 표정을 마주하니 또다시 이성의 끈이 안드로메다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명치에 무엇이 탁 걸린 듯 불편해졌다. 옷으로 만든 거대한 햄버거가 소화되지 못하고 걸려버린 것이다. “다온아, 자꾸 옷을 버리면 지구가 아프대, 나중에 다온이가 키가 쑥쑥 커서 옷들이 작아지면 그때 사주면 안 될까?”이해가 아닌 체념의 빛이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다.

아이의 생각이 커질수록 체념이 이해와 깨달음이 되길 바라본다. 나는 오늘도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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