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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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1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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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면 동대리와 용진리의 '수해 1년'
한 인 섭<사회문화체육부장>

최근 충청타임즈와 충북대 위기관리연구소, (재)희망제작소 재난관리연구소, (사)충북이재민사랑본부가 공동으로 실시한 '수해 1년단양 동대천을 가다' 기획 시리즈와 실태조사는 대규모 수해가 발생했던 단양군 영춘면 동대1, 2리와 용진리 마을을 모델로 수해복구 공사와 복구지원 시스템 등에 대한 '사후 평가'에 의미를 둔 접근이었다.

조사단 9명과 취재진이 방문했던 복구 현장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면접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큰 아쉬움은 '수요자 중심의 정책과 행정'이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조사단이 만난 단양군 영춘면 용진리 엄모씨(68)의 하소연은 복구행정의 현주소였다. 복구 공사로 높은 둑이 만들어지면서 4000여의 엄씨 고추밭은 웅덩이 모양처럼 변했으나, 배수로 높이는 바닥 보다 높았다. 비가 조금만 와도 물에 잠기는 2차 피해가 발생하자 엄씨는 시공업체와 군청, 충북도청에까지 하소연 했으나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며 흥분했다. 속이 시커멓게 탄 듯했던 그는 '언론에서 때려 달라'며 작심(作心)한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엄씨 사례는 실태보도 직후 충북도 관계자가 현장을 방문해 시정을 약속하긴 했지만, 수해지역 주민들과 행정기관 소통의 단면을 잘 드러낸 일이 아닌가 싶다. 엄씨와 같은 연배의 한 농민은 수해로 고생을 한 후 자식들 챙겨줄 정도의 규모로 농사를 줄였다고 한다. 칠순을 앞둔 연령층이 농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해 상처는 천직으로 여겼던 농사일을 접게 만들고, 일할 의욕조차 꺾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을에서 만난 이장 한 분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한사코 꺼렸다. 이전에도 유사 사례가 있었지만, 모두 피했다고 한다. 실태를 그대로 말하기 곤란하고, 잘하고있다는 입에 발린 소리도 하기싫다는 눈치였다. 별생각 없이 언론에 나섰다 행정기관을 난처하게 하는 날엔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기획보도는 이런 사정을 감안해 이들이 곤경을 겪지않을 정도로 수위를 조절해야 했다. 혹을 떼주려다 혹을 붙이는 결과를 초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기자는 '자치단체로부터 싫은 소릴 들었다'며 하소연하는 주민 전화를 받아야 했다. 걸려온 전화는 또 있었다. 수해 원인이 많은 양의 비가 내린 탓도 크지만, 국립공원 지역에서 쓸려내린 고사목이나, 뿌리채 뽑혀 떠내려와 물길을 막았던 나무를 '주범'으로 진단한 아주머니였다. 국립공원 측이 아직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으니 기사에 꼭 반영해 달라는 당부였다.

수해복구와 이재민 지원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많은 예산과 관심을 쏟은 것은 해당지역 주민들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 잘살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복구 지원 시스템 역시 주민들의 요구에 맞게 진행돼야할 것 같다. 이른바 '수요자 중심의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수해복구'의 '소비자'가 과연 누구인지 의심을 살만한 구석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2차 피해'를 바로잡아 달라는 주민요구는 엄씨 사례처럼 번번이 묵살됐다. 하천과 교량, 도로, 상수도 등 삶의 터전을 리모델링 하는 사업 역시 주민들은 '관객'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이런 저런 '의견'이나 '불평'이 가져올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주민들의 눈에는 아직 정부나 자치단체가 제 주머니 풀어 시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비춰진 듯했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가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둬 예고없는 수해가 또 어디서 재현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영춘면 동대리, 용진리 주민들의 '수해 1년'은 주목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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