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담긴 저마다의 마음
시간에 담긴 저마다의 마음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8.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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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우리 몸에는 보이지 않는 시계가 있나 보다. 정확히 시간을 알려준다. 그 시간을 거역하기라도 하면 강렬한 감정이 나타난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경험하곤 한다.

나는 가끔 상담에서 스토리를 구성하는 활동을 하는데, 아이가 자신의 스토리를 철창 안에 갇힌 것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답답하다'와 `외롭다'는 감정 단어로 마음을 표현한다. 경제활동으로 바쁜 양육자, 외동이라 늘 혼자이고 외부 활동도 제약이 있어 유일한 친구가 핸드폰이라고 말한다. 아이뿐만이 아니다. 하루하루가 감옥생활이라며 고독한 죽음을 상상한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쿵하고 가라앉는다.

수년 전 소년원에서 독서치료를 진행했을 때의 이야기다. 소년들과 울타리에 갇힌 답답함과 세상에서 낙오된 마음에서 오는 불안감을 이야기했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기는 하는데 너무 더디 흘러 이 시간이 가긴 하는 건지 시간의 감옥에 갇힌 것 같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목청껏 외치고 싶고 뛰쳐나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시간을 견딘다고 하면서.

나도 종종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 바랄 때가 있다. 반복되는 부모의 다툼과 생활의 빈곤, 폭력과 방임이 일상인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절망할 때 그렇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저마다의 밀도로 살아내고 있다.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와 달력 안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각 사람의 마음과 가치에 따라 저마다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이자벨 미뇨스 마르틴스 글, 마달레나 마토소 그림, 2016)'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사물의 관찰과 마음의 변화를 담은 그림과 언어로 보여준다.

“아이는 자라고 연필은 짧아져. 냄비 속 양파는 부드러워지고 손등은 쭈글쭈글 거칠어지지.”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흐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산책길은 여행길이 되고 오솔길은 도로가 되기도 해. 빗방울은 머지않아 바다를 만나지.” 시간의 흐름은 우리를 더 넓고 새롭고 멋진 여행으로 초대한다는 것도 이야기한다.

“촌스럽던 것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멋있던 것이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하지.” 시간이 흐르면 확고했던 나의 신념과 가치관이 변할 수도 있으며,

“하지만 어떤 친구들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회 현상, 개인의 변화, 자연의 법칙,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순간과 영원, 성장과 소멸 등 철학적 주제가 담겨 있어 깊은 여운을 준다.

노랑, 빨강, 파랑, 검정, 4가지의 색을 기본으로 그려진 장면들은 단조롭지만 세심하다. 그림 속, 소녀의 성장과 달팽이의 이동은 그림책을 읽는 순간마저도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게 한다.

조심스러운 말이 있다.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종종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거야.' 위로의 언어들을 자주 사용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있고, 듣는 이가 포기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책을 내민다.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할 때, 버둥거려봐야 어쩔 수 없을 때, 그렇게 살아내야 할 때 말이다.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영원을 경험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코로나가 끝나기를,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아물기를, 시간이 흐르면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가기를. 시간이 흐르면 회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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