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를 자각한 삶과 해체된 삶
무지를 자각한 삶과 해체된 삶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8.18 1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소크라테스와 20세기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해체주의자 데리다가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술고래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소크라테스:나는 무지를 자각하고 살았으며 다른 사람도 무지를 자각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신과 만나보니 나와는 결이 다르지만 비슷한 얘기를 했네요.

데리다:존경하는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만나니 가슴이 벅찹니다. 선생님의 철학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선생님은 무지를 자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사람의 삶은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소:해체된 삶? 그건 어떤 삶이지요?

데:사람들은 자기 내면 깊숙이 있는 침묵의 영역에 눈을 감고 삽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심연(深淵, abyss)으로부터 올라옵니다. 그 심연은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깜깜한 암흑이라고나 할까요? 그 어두운 심연 위에 떠 있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고 또 삶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삶, 특히 우리가 나(自我, self)라고 부르는 건 알 수 없는 미지의 심연 위에 떠 있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곧 단단한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지요. 허공 위에 떠 있는 한 줌 연기와 같은 게 나라고 하는 것이지요. 자신을 절대화하고, 내가 옳고, 내 삶이 정당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삶이 미지의 심연 위에 떠 있다는 걸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삶이 미지의 심연 위에 떠 있는 신기루와 같아서 절대화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소:아~ 내가 말하는 무지를 자각한 삶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네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저렇게 편안하고 안온하게 살 수 있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의 주체라는 무의식적 신념을 갖고 삽니다. 그런 신념이 사람들의 삶을 안정적이게끔 합니다. 그런 신념이 무너진다면 삶이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마치 건물 바닥이 꺼질 때나 바닥 없는 우물 속으로 추락할 때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 가운데 산다고 상상해보세요. 견디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인정하려고 할 때마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다이몬이 `그건 아니야!'라고 하면서 나의 안정적인 기반을 허물어서 나를 바닥 없는 심연으로 추락시켜 불안정하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알 수 없는 심연으로부터 다가오는 다이몬의 목소리에 의해 깨진 삶이 무지를 자각한 삶입니다.

데:상당히 과격한 삶의 방식이네요. 바닥이 꺼질 때의 공포감이나 두려움,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면 멘탈이 붕괴가 되겠네요. 아니, 무지를 자각한다는 건 멘탈을 붕괴시키는 삶이네요. 선생님이 다른 사람의 멘탈도 붕괴시키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그러니까 아테네 사람들이 선생님을 죽여야 한다고 한 거네요. 나의 해체도 자신을 절대화하는 삶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과격하게 깨트리지는 않습니다. 나를 해체하고 산다는 건 타자와 싸워 이기는 삶의 방식이 그 타자에 의해 자신의 독자성이나 절대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걸 자각하고 사는 것이지요. 해체주의적 삶은 많이 이기면 많이 빨리 깨진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를 무한 확장(maximize)하지 않고 최소화(minimize)하면서 삽니다.

소:우리는 비슷한 듯하면서 완전히 다르네요. 삶이란 것이 타자(심연의 목소리)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절대화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거네요. 그걸 안다고 하는 것과 삶의 절대성 자체가 봉괴되는 체험을 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게 아닐까요? 곧 안다는 것과 해보는 건 다른 거지요.

데:나는 절대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만 줬기 때문에 천수를 누렸고 선생님은 절대화된 나를 갖고 사는 사람들을 깨트렸기 때문에 끝까지 못 산 거지요.



/충북대 철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