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 그리고 슈퍼밴드2
‘낙하’, 그리고 슈퍼밴드2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1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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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광복절 대체 휴일 지정으로 사흘간의 연휴 내내 `집콕'하면서 한국의 대중가요 K-Pop의 바다에 빠져 있었다.

POP의 전설 비틀즈와 당당하게 견줄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BTS의 놀라운 활약을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K-Pop은 이미 세계 정상이며 보편이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한국인 특유의 창조적 DNA와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 능력이 거론되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한국의 청년들을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옛날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매 듀엣 악동뮤지션과 아이유, 20대에 불과한 청년들이 최근 발표한 <낙하>라는 노래에 대해서도 나의 꼰대적 선입견은 견고했다. 다만 내가 그 노래를 온전히 다 듣기 전까지는. 통상적이고 관습적인 언어 관념에서 `낙하'는 다분히 절망의 범주에 해당한다. 지면의 한계에도 <낙하>의 가사 대부분을 옮겨야 하는 까닭은, 이 노래가 기존의 관념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전복'의 가치를 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말했잖아 언젠가/ 이런 날이 온다면/ 난 널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죄다, 낭떠러지야. 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플지도 모르지만/ 내 손을 잡으면/ 하늘을 나는 정도/ 그 이상도 느낄 수 있을 거야/ 눈 딱 감고 낙하- 하~/ 믿어 날 눈 딱 감고 낙하/ 초토화된 곳이든/ 뜨거운 불구덩이든/ 말했잖아 언젠가 그런 날에/ 나는 널 떠나지 않겠다고. <하략> 이 노래 <낙하>는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오스트리아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어에서 연상되는 끔찍했던 세계대전의 경험의 고통과 불안에 대한 지금까지의 각인을 거부한다. `낙하'는 이문열의 동명 소설 역시 날개 없는 청년 주인공의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고,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고 태양에 도전했던 그리스 신화 이카로스도 태양열에 녹아 추락하는 절망과 좌절의 표상일 뿐이었다.

아이유와 악동뮤지션의 <낙하>는 이런 고정 관념을 완벽하게 전복시킨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사회적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장 적극적인 위로와 공감으로 새로운 세계를 제안하는 일에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떨어지고 떨어지다 보면, 하지만 땅이 없을 때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날아가게 되지 않을까?”라는 아이유의 해석처럼 추락의 끝없음도 지구 반대편에서 보면 끝없는 상승으로 보인다는 무모한 도전.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극도의 좌절과 절망을 희망으로 역전시키는 철학적 기개가 당당하다. <낙하>가 수록된 앨범의 타이틀은 Next Episode, 거기에서 추구하는 주제는 단순한 육체적 편안함을 넘어 어떠한 환경과 상태에도 영향받지 않는 진정한 `초월자유(Beyond Freedom)'를 추구한다.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만 나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철학적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우리가 믿었던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가짜고 우상이다.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이진우. 니체의 인생 강의 中) 어떤가. 악동뮤지션과 아이유의 <낙하>가 니체보다 더 깊고 넓으며 새롭지 않은가.

JTBC에서 경연이 한창인 <슈퍼밴드2>는 `이제는 K-밴드다. 음악 천재들의 밴드 결성 프로젝트'를 추구한다. 덤으로 얻은 연휴 동안 재방송을 보고 또 보았다. 난무하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 가운데 <슈퍼밴드2>는 가장 충격적이다. 강호에서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이 꾸미는 이 무대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클래식 음악과 국악, 각종 대중음악의 장르는 물론 당연히 출중한 연주와 노래의 기린아들이 펼치는 전혀 새로운 음악 세계는 소름 끼치게 한다.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와 융합, 연주 도중에 거문고의 줄을 끊어내는 등의 파격은 관념화된 형식을 거부한다. 입시지옥에서도 만들어지는 창조적 전복의 꿈. 연휴 동안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로 아파트 주차장은 빈틈이 없는데, 청년들의 거대한 상상과 도전은 이미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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