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
매미 소리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8.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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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일 년 사계절 중 가장 청각적인 계절은 여름일 것이다. 여름 중에도 늦여름일 텐데, 주인공은 단연 매미이다. 매미는 목청껏 울어대며 여름의 절정을 알리고 동시에 가을의 도래를 예고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강지덕(姜至德)은 이런 매미 소리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매미 소리(聽秋蟬)

萬木迎秋氣(만목영추기) 모든 나무들이 가을 기운 맞았는데
蟬聲亂夕陽(선성난석양) 매미 소리는 석양에 어지럽게 들리네
沈吟感物性(침음감물성) 마음 깊이 사물의 본성에 대해 읊조리면서
林下獨彷徨(임하독방황) 숲 아래를 빙빙 돌 뿐이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시간적 제약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도 매미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사는 수명의 길이에 차이가 있을 뿐, 나고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입추가 지나 숲에 가을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던 날 저녁 무렵, 시인은 숲을 거닐고 있었다.

시인의 귀에는 온통 매미 소리뿐이었는데, 저무는 해를 배경으로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 왔다. 시인은 어지러운 매미 소리에서 도리어 고요한 자연의 이치를 떠올렸다.

매미가 부쩍 어지럽게 울어 대는 것은 계절의 추이를 알리는 신호일 뿐이다. 매미는 곧 세상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고, 시인 자신도 마찬가지이리라.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바뀜을 소리로 알려 준다는 점에서 매미 소리는 시곗바늘 도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시인은 삶의 덧없음을 탄식하지도 않는다. 나고 죽는 것이 사물의 본성임을 어지러운 매미 소리에서 거듭 깨우치고 자연의 섭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관조적 태도를 보여 준다. 시인이 숲 아래를 빙빙 돌 뿐,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매미는 밤낮으로 울어 대며 일생을 보낸다. 비록 늦여름 짧은 시간을 살지만, 그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여름을 상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미 소리는 여름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존재감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매미 소리에서 사물의 본성을 깨닫고, 삶에 대한 달관을 얻기도 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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