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 속에 가재가 산다
모터 속에 가재가 산다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8.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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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고무다라에 받아놓은 물이 아직 데워지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물로 뛰어들었다. 환호를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흡족하다. 아쉬운 것은 고무다라가 너무 작아 둘이서 놀기에는 많이 비좁았는데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고 마냥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누구나 물을 무척 좋아한다. 물만 보면 손을 넣고 싶어 하고 물 사래질을 한다. 작은 고무더라 속이지만 휘젓고 첨벙거리며 즐기는 물놀이는 아이들에게 더없이 기쁜 놀이였다.

서로 물을 끼얹고 물탕을 치며 놀던 5살배기 손녀가 “야! 여기 싸면 어떻게 해?”하며 고무다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자세히 물속을 들여다보니 3살배기 손자 녀석이 응가를 해 놓았다.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다. 녀석은 똥물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좋아라 논다. 번쩍 물 밖으로 들어냈으나 앙탈을 부리며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간신히 잡아두고 새물로 갈아주기 위하여 고무다라의 물을 쏟아버렸다. 물뿌리개 조절기를 돌렸는데도 물이 찔끔거리고 나오질 않았다. 잠겨 있을지 모르는 수도꼭지를 확인하고 호스가 꼬였을까 점검했으나 이상이 없는데도 역시 물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혹시 샘이 마르지 않았나 들여다보니 물은 넘쳐흘렀고 모터도 힘차게 돌아가는데 물이 나오지 않으니 영문을 모르겠다. 아이들은 빨리 물을 받아 달라고 보챈다.

물놀이를 접고 닭장으로 갔다. 닭장 우리에는 5마리의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과 오리와 기러기가 있다. 지난번 너구리의 침범으로 닭 열세마리와 오리 한 마리, 기러기 세 마리가 침탈을 당하는 수난에도 살아남은 것들이다.

오리와 기러기는 연못으로 뛰어들어 수영을 못하는 너구리들로부터 구사일생 살아남았고 암탉은 며칠째 행방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숲 속에서 알을 품고 있었던 모양으로 수난을 모면한 뒤 병아리 다섯 마리를 이끌고 귀가했다. 아수라장이 된 닭장을 정리하고 뚫린 철망을 보수하였지만 가축들은 한동안 불안해하며 우리를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낮에는 방사해 놓았다 밤에만 들어가 잠을 자는 우리다. 가축을 공격하는 놈들은 너구리를 비롯하여 족제비, 고양이들로 모두 야행성이라서 주로 밤에 공격하므로 방사시키다가 날이 저물고 일제히 우리로 귀가하면 문을 닫아주면 된다.

손녀가 오리 알을 주워 조심스레 꺼내왔다. 호기심 많은 손자 녀석은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피다가 땅에 굴리고 내던지며 재미있게 가지고 놀았다.

새끼들은 다 귀엽다. 병아리를 만져보고 싶어 안달하지만 어미닭은 접근을 불허한다. 다가가는 아이를 향해 모성이 강한 어미닭이 달려들자 뒤로 벌러덩 엉덩방아를 쪘다. 손녀가 노래를 한다.

아기 병아리 삐약 삐약 삐약/노란 병아리 삐약 삐약 삐약/더 크게 라라라 노래해 라라라/엄마 따라서 삐약 삐약 삐약/아기 병아리 삐약 삐약 삐약/한 걸음씩 뒤뚱뒤뚱/줄을 맞춰 뒤뚱뒤뚱//작은 병아리 삐약 삐약 삐약/예쁜 병아리 삐약 삐약 삐약/더 크게 라라라 노래해 라라라/엄마 따라서 삐약 삐약 삐약/한 걸음씩 뒤뚱뒤뚱/줄을 맞춰 뒤뚱뒤뚱//

이번엔 밭으로 갔다. 가지, 토마토, 오이, 참외밭이다. 손녀는 그래도 색깔을 구별할 줄 알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제법 익은 것만 골라 따는데 손자 녀석은 아무거나 손에 닿는 대로 딴다. 개의치 않기로 했다.

갑자기 소나기기 쏟아진다. 서둘러 컨테이너로 피신했다. 간식을 나눠주며 유튜브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 아기상어와 고고다이너를 틀어주고 물이 막힌 자가 수도 펌프를 고쳤다. 이곳저곳 꼼꼼히 뜯어보았으나 아무데도 고장 난 곳이 없다. 최종 호스와 모터가 연결된 배관을 열었다. 아! 그런데 거기에 엄지손톱 보다도 큰 가재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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