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배
생각의 지배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1.08.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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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우리는 가끔 착각하며 산다.

내가 하는 행동이 모두 옳다고. 또한 내가 걸어가는 방향이 무조건 맞다고.

일거수일투족이 원칙과 상식을 벗어날 리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앞세우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행동엔 늘 명분이 있다.

내 자식이 대회에 참가해 입상하면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남의 자식이 수상하면 운이 좋은 것으로 치부한다.

자녀의 학교에 자주 가는 것을 두고도 내가 하면 교육열이고, 남이 하면 치맛바람(바짓바람)이다.

이런 이유로 때론 우리는 자신의 렌즈로 타인을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과 철학마저 주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충북도교육청이 책 읽는 학교 지원 사업을 통해 1억4400만원의 예산을 들여 특정도서 5종 9600권을 산하 시·군 교육도서관을 통해 도내 초·중·고교, 특수학교, 대안학교 총 480교에 배부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지정 도서 구입 목적에 대해 충북도교육청은 단위 학교에서 교사 연수, 소통간담회, 교직원 토론도서로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도교육청이 올해 일선 학교에 배부 목적으로 지정한 도서는 △학교를 민주주의 정원으로 가꿀 수 있을까 △최고의 교육 △삶을 위한 수업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대한민국 평화기행 등 5종이다. 학교별로 적게는 13권, 많게는 30권까지 배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도교육청은 올해와 같은 1억4400만원을 투입해 교직원의 독서, 인문 소양 교육을 목적으로 사용하라며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로봇시대 인간의 일 △선생님 민주시민 교육이 뭐예요 등 지정도서 3종을 도내 전체 학교에 배부한 바 있다.

김병우 교육감 체제가 구축된 후 도교육청은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창의성과 잠재성이 발휘될 수 없다며 혁신의 필요성을 늘 주창해왔다. 그런데 책 읽는 학교 지원 사업을 앞세워 도교육청은 추진하고 싶은 교육 철학과 가치를 교직원들과 공유하겠다며 책까지 나눠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런 일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도교육청은 지난 2016년엔 도내 유·초·중·고·특수·대안학교 교(원)장 505명을 대상으로 한 학교장 소통 연찬회를 앞두고 친절한 공문을 단위 학교에 발송했다. 공문에는 21세기 타운홀 미팅을 위해 다니엘 핑크의 저서 `드라이브'를 탐독하고 행사장에 참석할 것을 명시했다. 당시 타운홀 미팅의 토론 주제는 `민주적 학교 운영을 위한 리더십은?', `구성원의 자발성을 높이는 리더의 자세는?'이었다.

올해 배부한 도서를 받은 학교 현장의 반응과 5년 전 소통 연찬회 참석한 교장들의 반응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수십 년 교육 경력을 갖고 나름의 철학과 교육관을 갖고 교단에 서는 교원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한 술 더 떠 김병우 충북교육감은 2017년 7월엔 간부회의를 통해 본청 과별로 매주 수요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공동 독서토론 시간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다. 이때도 부서별로 토의 및 독서토론 계획서를 기획관실에 제출토록 한 것은 물론 도서 목록(30권)까지 안내했다.

지난 3월엔 세종시교육청이 촛불집회가 시작된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까지의 시국 현장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한 도서 `촛불혁명'을 관내 모든 학교에 교육용으로 배포해 정치편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힘을 가졌다고 타인의 생각마저 손에 쥘 권한은 없다. 타인의 생각까지 지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만큼 오만함은 없다. 획일적 교육을 비판하고 혁신을 외치면서 자신의 철학과 생각을 요구하는 것. 독재와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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