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제색도'를 만나기 위해
`인왕제색도'를 만나기 위해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21.08.11 2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지난 4월 말,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미술소장품 중 2만 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분산 기증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7월 21일, 두 곳에서 나란히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시작했으며 그 중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 중인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포함된 `인왕제색도(국보)'를 직관하기 위해 아직까지 열심히 예매 전쟁 중에 있다.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작품이 없겠지만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인 `인왕제색도'는 우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 중국 화풍에서 벗어나 최초의 조선의 산수를 그리며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진경산수의 절정이라 꼽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전시관람이 쉽지가 않다. 수도권 코로나19 방역 4단계로 인해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사람만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회당 20명씩 예약을 받고 있어서 매일 0시 시작되는 `사전예약전쟁'을 통과하기가 쉽지가 않다. 사이트에 접속한 순간 몇 초 만에 마감된다. 필자의 손가락이 늦은 것인지 눈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오늘까지도 예매를 못 했다.

이러던 차에 지난 9일 서울 강서구에서 인왕제색도를 유치하겠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마 겸재 정선이 1740년부터 1745년까지 5년간 양천현령(지금의 강서구)을 지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2009년에는 강서구에 겸재정선미술관을 건립하고 `총석정도', `청하성읍도'등 겸재 정선의 원화를 다수 전시하고 있다. 이곳은 필자가 정선의 작품 공부를 위해 몇 해 전 서너 번 다녀왔던 곳이기도 하다.

최근 `이건희 미술관'유치전에 전국 지자체 30여 곳이 참여하는 등 과열양상을 보이다가 마침내 서울에 건립하기로 최종 발표가 났다. 그 와중에 `인왕제색도'만큼은 강서구의 겸재정선미술관으로 유치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 이유가 문화예술 성장의 원동력은 물론, 중앙·지방 간 상생 협력과 문화 분권을 일궈 가는 촉매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도 문화 분권을 말하는 그곳이 지방에 있는 나로서는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한여름 소나기가 지나간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의 어떤 점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가난한 양반 가문의 맏아들로 태어나 스승인 김창흡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고, 평생지기인 사천 이병연을 그곳에서 만나게 된다. 정선과 이병연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진정한 친구로 60여 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런 친구가 노환으로 몸져눕게 되자 친구의 안위를 생각하며 붓을 들고 그의 심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인왕제색도'는 1751년 그려졌으며 사천 이병연은 1751년 5월 29일에 숨을 거뒀다. 당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병연이 죽기 사흘 전까지 서울에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바로 그 무렵에 이병연이 숨을 거두기 며칠 전까지 그린 것이다.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의 60여 년의 추억이 담긴 인왕산 자락과 그곳 옛집의 풍경이 고즈넉하게 담겨 있는 이 그림은 사랑과 추억, 인내와 극복 그리고 슬픔과 희망을 모두 품고 있다. 백 마디 말 대신 그림으로 세상과 연결하고 소통하려고 했던 정선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인왕제색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던 다른 미술관에 있던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는 겸재 정선의 마음 안에 머무른다.

오늘도 나는 작품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클릭을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