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
무심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12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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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자
심 억 수

예부터 여인의 길은 매우 험난하고 어려웠다. 결혼 후에는 여필종부라 하여 부모가 정하여 준 배필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순종하며 살아야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하여 시집온 여인은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으로 살아야 했다고 한다. 오로지 모든 인생을 시집을 위해 살아야 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칠거지악이라 하여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못하며, 행실이 음탕하거나 질투가 심하고, 악질에 걸리거나 말썽이 많으며, 도둑질을 하면 가차 없이 내쫓기었다. 그러나 아무리 칠거지악에 드는 악처라 해도 삼불거가 있었다. 쫓아내어도 갈 곳이 없거나, 부모의 상을 같이 치렀거나, 가난할 때 같이 고생하다가 부귀하게 된 때에는 내치지 않았으니 그나마 여인과 아내로서 조금은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요즈음 현실은 부부간에 믿음과 사랑이 없으면 헤어지는 세상이 되었다. 감히 아내에게 여필종부를 강요하는 남편이 있다면 한창 유행하는 간 큰 남자임이 틀림없다.

아내는 인생의 반려자이다. 옛날처럼 순종만을 강요한다면 의견충돌이 잦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성격 차이라며 헤어지자'고 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회적 체면과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보다 자아실현 주의가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남편이 요구하는 이혼보다 아내가 요구하는 이혼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전통적 가풍을 이어가는 종손으로 태어나 순종을 미덕으로 여필종부하신 어머님을 보고 자라서인지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살아가는 아내에게 동반자로서 인격을 존중하기보다는 나의 권위에 금이 갈 것 같으면 단호하게 화를 내기도 했고, 나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접근해 오면 의식적으로 경계하였는지도 모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돌이켜보니 참으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20여년 말없이 반려자로서 자리를 지켜준 아내의 주름살이 마음을 찡하게 한다.

함께 늙어가면서 서로 의지하며 작은 기쁨에도 마주보고 웃을 수 있고 서쪽하늘에 지는 장엄한 노을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어느 수필가는 "젊어서의 아내는 연인, 중년의 아내는 동반자, 황혼의 아내는 간호사"라고 했는데 늙어서 간호를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껏 숨죽이며 살아온 아내를 위하고 사랑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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