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아이
내면 아이
  • 변정순 수필가
  • 승인 2021.08.0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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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변정순 수필가
변정순 수필가

 

어린 시절 생긴 상처로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무의식 속에 결핍과 열망으로 남는다. 원가족에서 어린 시절을 가족의 `희생양'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산 사람과 `어린 부모'역할을 하며 `마스코트', `문제아', `잃어버린 아이'로 살아온 이들에서 치유되지 않은 미해결 과제는 대부분 가족이나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빚는다.

역기능 가족에서 상처받은 내면 아이의 전형적인 삶이다. 나는 `집안의 영웅'이며 `희생양'내면 아이였다. “쟤는 어린 것이 살림을 잘하네.”, “동생들을 잘 챙기고 할머니 닮아서 깔끔하고 집안 정리도 참 잘해.” 부모님께 이런 말을 듣고 산 난 더 칭찬받으려 애쓰며 살았다.

우리 사 남매는 자취했다. 중학생으로 자취생활하던 어느 날, 중1 남동생과 일란성 쌍둥이 사촌 동생이 가방을 둘러메고 자취방으로 왔다. 엄마가 나를 믿고 동생들을 보냈던 것이다. 그 후, 밥과 청소를 하며 학교에 다녔다. 엄마는 가끔 오셔서 반찬과 빨래를 해 주셨지만, 고교진학 준비로 공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는 공부보다 살림에 시간을 더 많이 빼앗겼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힘든 시기를 보낸 건 사실이지만, 그때 상황은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내 몫이라고 받아들였다.

중3 시절이 어쩌면 내 안에 `내면 아이'는 내 의견도 내세우지 못하고 타인의 도움도 청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아이'로 투명인간으로 살지 않았나 싶다. 그땐, 부모의 믿음과 규칙을 거역할 충분한 힘은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착한 아이였다.

사촌까지 자식처럼 챙겼던 엄마. 이런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경증치매로 전보다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달라졌다. 사야 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걸 꼭 사야 하고, 시장에 들어서면 돈이 얼마가 들 건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집어들어 당황한다는 요양보호사의 격양된 말투가 엄마의 상태를 짐작게 한다. 뭘 하고자 하면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그 고집을 아무도 꺾을 수가 없다.

하루 몇 번씩 전화해도 또 잊어버리고 경도인지장애 상태의 엄마를 보고 있으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지금 엄마의 문제를 지켜보면서 중학생 내면 아이를 떠올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끌어안고 혼자 해결하려는 내가 너무 힘겹다.

`나는 완벽해야 해!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책임감이 강하고, 집안의 성취와 성공을 바라는 내면 아이는 성장을 멈춘 채 여기저기 구멍 나 미숙하고 나약한 인격체가 되었다.

그간 어린 부모 역할, 착한 아이 역할로 살았던 내면 아이. 가끔 내면 어른이 되어 억눌렸던 감정을 분노로 표현했지만,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치유되지 않았다.

모든 신화에서 아이는 부활과 완전함의 상징이며 신화 속에서 어린아이는 대부분 변화나 재생을 예고하는 신성한 존재이거나 영웅적인 지도자라고 말한다. 신화 속의 아이처럼 내 안의 내면 아이도 변신 할 수 있을까?

창조적이고, 잘 놀고, 즐거워하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랑하고 희망 있는 진정 밝은 어린아이 같은 아이로 변하기를 원하며, 어린 시절 내면 아이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려 한다. 동생들을 돌보느라 힘들었던 내면 아이, 어머니를 돌보는 어른 자아인 나 자신을 위해 이제라도 내 안에 숨어 있는 슬픈 `내면 아이'를 힘껏 끌어 안아줘야겠다. 진정한 치유가 가능해질 때 어린 `내면 아이'는 행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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