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회갑잔치
아들의 회갑잔치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8.0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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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감동적인 만찬이었습니다. 절친 의제가 저녁식사나 같이하자고 해서 갔더니 그의 회갑을 축하하는 자리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마련한 회갑연이었는데 그들의 아름다운 우애와 구순을 바라보는 부친의 참석이 주는 울림이 컸기 때문입니다. 회갑잔치를 하던 시절 자식들이 회갑 맞은 부모를 등에 업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목도할 때마다 50대 중반에 병사하신 아버님 생각이나 부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해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펑펑 울었던 옛 생각이 나서 그랬고, 자식 회갑연에 부모님의 임석 광경을 처음 봐서 그랬습니다. 그리 장수하기도 어렵지만 살아있다 해도 거동이 불편해 거처에 있거나 요양원에 있기 십상이니까요. 5남매(아들3 딸2) 직계가족만 참석한 조촐한 연회였지만 동생의 사회로 진행된 덕담 릴레이가 여운을 주었습니다.

둘째아들의 요청으로 덕담의 첫 주자가 된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동안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의 면면을 둘러보더니 `우리 큰아들 행복하게 잘 살아라'란 말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갔고 자손들은 박수로 배웅했는데 그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상처의 아픔을 딛고 5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장한 아버지였고, 자식들 또한 우애로 똘똘 뭉쳐 어엿하게 일가를 이루고 사니 당연지사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회갑(回甲)은 우리 나이로 61세가 되는 생일을 일컫습니다. 환갑(還甲) 화갑(華甲/花甲) 주갑(周甲)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한 갑자를 잘 살았음과 또다시 한 갑자를 시작함을 경축하는 함의가 담겨 있지요. 그래서 옛사람들은 수연(壽宴·壽筵)이라 일컫는 회갑잔치를 성대하게 열었지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곡강시(曲江詩)'에서 탄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를 들추지 않더라도 불과 70년 전만 해도 마을에 60세를 넘긴 어른들이 흔치 않았으니 회갑맞이는 인간승리였고 동네잔치를 할 만큼 경사였던 겁니다.

마을주민들이 회갑상에 차려놓은 밤·대추를 얻어다가 자손들에게 먹이면서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생존여건이 좋지 않은 옛적에도 아들 회갑을 맞아 즐거워한 이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심수경(1516~1599)이 `청천당시집(聽天堂詩集)'에서 `나는 여든, 아들은 환갑을 넘었네. 부자가 모두 장수하네(吾踰八耆兒還甲 父子俱爲壽域人)'라고 노래한 걸 보면 그렇습니다. 조혼문화여서 20세에 득남할 수 있었으니 섭생을 잘하고 역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가능했으리라 여겨집니다.

100세 시대여서 자식 회갑쯤이야 누워서 떡먹기라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30세가 넘어 결혼하고 출산하는 작금의 세대들에겐 더더욱 그렇습니다.

90세가 넘어야 가능한 일인데 살아있다 해도 십중팔구는 요양원에 있을 테니 말입니다.

아무튼 미풍양속이었던 회갑잔치가 사라지고 갓난아이들의 백일잔치와 돌잔치가 제 세상을 만난 듯 요란을 떱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이니 탓할 수도 없음입니다. 아니 기뻐할 일입니다.

필자는 두 아들 덕분에 회갑 때 전 가족이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 다녀왔고 아내 회갑 때는 동유럽으로 12박13일 여행 다녀왔으니 나름 멋진 수연이었다 반추합니다. 세월유수라더니 어느새 큰아들이 마흔입니다.

21년 후면 아들은 회갑이 되고 나는 구순이 될 터. 그때 의제 아버님처럼 아들 회갑연에 참석해 덕담을 줄 수 있을지 심히 의문입니다.

아니 그러고 싶지만 이 또한 부질없는 생각이고 욕심이라는 걸 알기에 사는 날까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리라 다짐합니다.

자식 회갑 때까지 건재하는 건 축복이지만 부자유친 없는 자식 회갑이 무슨 소용이며, 건강 없고 자립 없는 장수가 무슨 대수이리요.

그저 소풍 다하는 날까지 즐겁게 자족하며 사는 겁니다.

그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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