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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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1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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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하이닉스 사내하청동지들이여
김 남 균 <민주노총충북본부 前 사무처장>

육아휴직을 끝내고 일터로 복귀할 무렵, 굳게 마음먹은 것이 하나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하면 짐싸들고 말려야지. 단 원청의 정규직노동자들, 즉 원청노조가 함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렇게 굳게 마음먹었다. 하이닉스, 매그나칩 사내하청 비정규노동자들과 보낸 3년, 그 시간은 나를 이렇게 패배자로 돌려 놓았다.

10년 동안 변치 않았던 임금 몇푼 올려보겠다고 그렇세 소박한 기대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하이닉스, 매그나칩의 비정규노동자들, 그 소박한 기대는 뒤로하고 어느새 투사가 되어야만 했던 그들. 서류뭉치 든 출근가방이 아니라, 한달치 노숙할 생필품을 구겨 넣을 배낭이 출근가방이 되어야만 했던 그들.

우리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얄팍한 돈 몇푼을 위로금으로 받고 그동안의 투쟁을 접는다 했을 때, 미안해서 눈도 마주치지 못했고, 차라리 집에서 있으니까 얼굴이라도 마주치지 않는 것에 위로를 삼기도 했다.

너무나 야속했다. 같은 월급쟁이 신세인데, 같은 노동자인데도 길거리에 나와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손한 번 내밀어주지 않았던 정규직 노동자. 한국노총소속의 수천명의 정규직 노동조합이 너무나 야속했다. 너무나 야속하고 너무나 미웠으면서도 그들에게 속시원하게 소리 한 번 질러 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단, 한 번! 우리가 힘들 때 결정적으로 단 한번!'하는 그 미련한 믿음 하나를 버리지 못해 그랬었구나.

사내하청노동자, 도급회사의 노동자. 그들에게 '노동기본권', 그 흔한 그 말한디가 통할 여지가 있으랴! 원청회사의 계약해지 공문 하나면, 모든게 끝장나버리는 그들. 수십년간 일해왔던 그 회사의 건물도, 그 기계도 그대로인데 하루아침에 회사만 증발해 버리는 그 불가사의한 현실. 이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려고 투사가 되어야만 했던 그들의 비극을 눈앞에 두고서, 다시는 하청노동자들이 '인간이기를 선언'하는 그 행위에 같이한다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하나 더 늘었다. 노무현! 이상수! 이용득! 이 사람들이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한다고 해서 만들어 놓은 '비정규보호법', 이 보호법이 시행되자 마자 '이랜드그룹'에서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 알량한 '0'개월 짜리 근로계약서, 하루짜리 초단기 계약서가 등장하더니 그 마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없어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리에 정규직노동자들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용역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들로.

아침에 한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내리는 비만큼이나,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고. 오늘도,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을 하이닉스, 매그나칩의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내리는 비만큼이나, 미안해요. 그리고, 내리는 빗방울이 모두 모여서, 우리를 절망케 했던 것들을 다 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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