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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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7.1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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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친 수험생 생각좀 하시오
김 영 일 <본보 대표이사 사장>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 시는 이육사 선생이 1939년 8월 문장(文章)이란 문학잡지에 발표한 '청포도'란 제목의 시(詩)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발표된 시의 정형이다. 조국의 광복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함을 읊은 것이다. 이 시에서 '손님'은 광복을 뜻한다. 그리고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서 그 손님을 맞아 청포도 먹을 준비를 정성스레 하고 있다. 광복 맞을 준비를 하자는 시인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올해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이다. 7월에는 복더위가 찾아온다. 1년 중 가장 더운 때이다. 이름하여 삼복(三伏)더위라 한다. 초복(初伏)은 하지 다음 세 번째 경일(庚日)이고, 중복(中伏)은 네 번째 경일이며, 말복(末伏)은 입추후 첫 경일을 말한다. 초복이 7월 20일 전후하여 들기 때문에 삼복더위는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걸쳐 있다.

올해는 15일에 초복이 든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조선상식(朝鮮常識)'이라는 저서에서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하여 복날은 여름더위를 꺾는 날이라 했다. 즉 더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정복하는 날이라 했다. 열가지 천간(天干甲乙丙丁戊己庚申壬癸)중 일곱 번째인 경(庚)에는 '뜯어 고친다'는 뜻과 함께 '새로운 시기를 연다'란 뜻이 들어 있다.

옛날 선인들은 복날 더위를 이기기 위하여 계삼탕(鷄蔘湯)이나 구탕(狗湯개장국)을 먹었다. 또한 복날을 흉일이라고 믿고, 씨앗뿌리기나 여행 등을 삼갔다. 더위를 이기려고 노력하고 몸조심을 하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2008년도 대입수능시험일(11월 15일)이 넉 달 가량 남았다. 대부분의 대학이 학생선발요강과 관련해 당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내신반영률 때문이다. 교육부와 대학들이 내신반영률을 놓고 볼썽사나운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

교육당국의 대학입시관리에 대한 간섭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예년에 비해 심하다는 느낌이다. 시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수험생들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대학총장들이 만나고 입학처장들이 따로 만나는 사태를 만든 당국을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기회균등할당제(저소득층 자녀를 입학정원에 포함시키지 않고 일정비율로 정해 선발하자는 것)'를 도입하겠다고 들고 나왔다. 이럴 경우 지방대학은 다 문닫아야할 형편에 처한다는 대학들의 볼멘소리가 나왔다.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제도를 갑자기 도입하겠다고 나서는 교육당국이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정원보다 많은 학생을 선발한 다음 졸업생 수를 정원에 맞추겠다던 졸업정원제에 대해 실패한 경험이 있는 교육당국이 정원외 카드를 뽑아들었다. 이런 것보다는 모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고 자체평가에서 성공적이라는 분석이 나온 '지역균형 선발제' 같은 것을 확대 시행하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지난 4일 4년제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교육부가 내신반영률을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했고, 대학측도 이를 받아들여 이일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교육부장관이 지난 6일 내신반영률을 30%부터 시작해 확대하여 나가자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주요 사립대학측이 반발과 함께 15∼20%정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어떻게 진행될 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수능시험준비생들이 겪는 7월의 복더위는 말로 표현키 어렵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만이 그 심정을 안다. 그야말로 복더위와 전쟁이다. 더위와 싸우기도 힘드는데 교육당국이 벌이는 행태는 수능준비생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수험생들에게 더위를 이길 보양식을 먹여주지는 못할망정 이들을 더욱 지치게 만드는 당국이 밉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인 이육사의 '청포도'를 음미하면서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대해 당국이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나아가 학생선발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성숙한 교육당국과 학생선발권을 당당하게 소신껏 발휘하는 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육사가 바라던 '손님'을 정성스레 맞이할 준비를 하듯 수험생들이 바라는 대학에 마음편히 응시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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