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보는 법
올림픽을 보는 법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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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의료의 이름으로 자유를 폐지한다면, 결국 의료도 폐지될 것이다. 삶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것을 폐지한다면, 결국 삶도 폐지될 것이다.”

“자유의 이름으로 의료를 폐지한다면, 결국 자유도 폐지될 것이다. 인간적인 것의 이름으로 삶을 폐지한다면, 결국 인간도 폐지될 것이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이 두 문장은 서로 정반대의 견해를 담고 있다.

앞의 문장은 `마스크'를 반대하는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것이고, 뒤의 것은 방역수칙 준수를 강조하는 슬라보이 지제크의 말이다.

다음 달 8일까지 계속될 일본 땅 도쿄 올림픽을 보면서 코로나19와 관련해 이처럼 상반된 철학자 두 명의 견해를 떠올리는 처지가 새삼 곤궁하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한 신문은 대한민국의 첫 금메달을 예상하면서 총과 칼, 그리고 활을 제목으로 선보였다. 각각 사격과 펜싱, 양궁 등 전통적인 강세 종목을 열거한 듯한데, 공교롭게도 세 종목 모두 도구를 쓰는 다소 호전적인 종목이라는 점을 느낀 내 감각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 우리는 올림픽에 갇혀 있다. 채널 선택권을 송두리째 앗아간 공중파 4개 채널의 올림픽 중계 몰빵으로 인해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낄낄거리던 주말의 자유는 날아갔고, TV를 꺼버리기 전에는 그 무지막지한 일방통행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니 힘겹게 방어하던 방역의 고난을 비웃는 듯 더 커다란 집단 감염의 근심과 위험에도 높고 두텁게 갇혀 있다.

그러니 생중계와 재방송이 끈질기게 거듭되는 방송3사 4개 채널의 기함(氣陷)같은 언어와, 승부가 갈리는 절묘한 순간의 영상이 환상적 예술이거나 평화로운 위로가 될 확률은 예전과 다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1년 연기된 탓에 4년을 넘겨 5년을 기다려온 선수들의 학수고대이거나, 국위선양 또는 개인의 영광에 국한된다 하더라도 올림픽 개최의 당위성은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위험한 `바깥'과 참아야 할 `모임'과 `인간관계'에 순종하며 집안에서 찌들어 있는 어떤 이들에게 TV를 통해 전달되는 역동적인 선수들의 몸짓이 어느 정도 위안의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경기에 나서기 전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거나, 심지어 마스크를 쓴 채로 시합을 해야 하는 선수들의 위태로움이 스포츠를 보는 이들의 카타르시스가 되는, 지금은 절대로 보통의 시간이 아니다.

광범위한 백신 접종에도 코로나19는 변이 바이러스를 만들면서 인류 전체에 대한 위협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우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는 가난한 이들과 TV화면보다는 훨씬 더 가까이 이웃해 있음을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Citius, Altus, Fortius)'성찰해야 할 시간. 그러므로 4단계, 혹은 3단계로 방역지침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면서 과거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올림픽 참가 선수들만큼의 인내와 집중력을 발휘해야 사회적 삶의 소멸을 막을 수 있다.

올림픽을, 그리고 거기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을 탓할 수는 없다. 4년에 1년을 더하는 세월을 절치부심해왔고 `경쟁'과 `능력'의 세계에 온통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처지에서 터져 나오는 아름다운 육체의 향연에 대해 마땅한 찬사와 갈채, 패배하더라도 충분히 위로하고 위로받아야 하는 팬데믹 시대의 올림픽 보는 법을 새롭게 각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행스러운 것은 몇 년 사이, 동메달에도 찬사를 보내며, 참으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칭찬이 우리 사회에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선수들은 물론 올림픽 관계자와 운영요원, 그리고 중계진을 비롯해 생생한 올림픽 소식을 전하기 위해 코로나19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인류다.

조국에 대한 영광도 좋고, 개인의 성공과 승리여도 좋다. 패배하면 또 어떤가. 그들이 끝까지 안전하게 올림픽을 마치는 것이 인류에겐 더 큰 희망이 될 것이다. 다만 올림픽에 몰빵하는 TV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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