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와 경당 이야기
소도와 경당 이야기
  • 이창수 시인
  • 승인 2021.07.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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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수 시인
이창수 시인

 

우리 상고역사 이야기에서 소도는 매우 중요하다. 쫓기는 자가 소도에 들어가면 쫓던 관원이 추격을 중지했을 정도다.

소도는 한님 때부터 하늘 제사를 지내는 성지이다. 소도 내에는 경당이 있어 혼인하지 않은 사내들이 여기서 글 읽고. 활 쏘고, 말 타고, 노래와 예절을 익히고. 격투기와 검술 등 6가지 기예를 배웠다.

우리 한족의 풍습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다는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위서'한전韓傳에 동이의 소도에 대한 설명으로 “귀신을 믿으므로 국읍國邑에서 각기 한 사람을 뽑아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 사람을 천군이라 부른다. 또 이들 여러 나라에는 각각 별읍別邑이 있는데 이것을 소도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도망자가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고 도둑질하기를 좋아한다.” 고 기록하고 있다. 공자의 `휘치필법'에 따라 헐뜯긴 했어도, 진수의 한전은 우리 민족의 호칭을 제대로 불러주었다. 우리 구한의 풍속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삼한'이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연방 대국이라는 사실과 하늘에 제사지내는 신족이라는 것을 이렇게라도 기록한 것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관에 쫓기던 자가 소도에 들어가면 추격하던 관원은 그자를 소도에 인계하고 추격을 중단한다. 소도는 인수한 자를 경당에 두고 규범에 따라 선배나 조의가 교육을 통해 교화했다. 교정되지 않고 소도를 훼손시키거나 예의를 잃고 날뛰면 금 8조에 따라 가두거나 변방의 군부대에 배속해 교정하게 했다.

태백일사의 `소도경전 본훈'은 소도의 경당에서 가르치는 책이다. 첫 장에 처음 역을 만든 5세 한웅의 막내아들 태호 복희와 동문수학하고, 학문과 도를 통했다는 선인 발귀리가 아사달 하늘 제사 끝나는 거 보고 지은 가사16행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소도는 한님 때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또 책 내용에 음양이 교차하며 이루어내는 조화와, 원·방·각이 조우해 나타내는 만물 성쇠의 도리와, 우주생성과 천지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천부경'이 있다. 제1장에서 제5장까지 `삼일신고'가 실려 있는 소도경전은 `황제중경'과 오행치수법이 함께 전하던 것을 한웅의 녹도문으로 책을 만든 것 같다.

소도와 경당은 삼신사상이 일궈낸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군사관학교 역할까지 한듯하다. 소도 출신의 면면을 살펴보면, 고조선 때는 국자랑을 길러냈고, 고구려 때는 명재상 을파소와 명림답부를, 조의출신 장군으로는 안장왕의 연애전쟁을 수행한 을밀, 수나라 30만 대병을 살수대첩으로 전과를 올린 을지문덕과 20만 검은 갑옷의 조의들, 당나라 20만 대군의 안시성 공격을 고작 5000의 군사로 막아낸 양만춘, 등잔 밑을 살피지 못하여 만시지탄을 남긴 명장 연개소문이 있다.

이처럼 소도는 우리 역사의 커다란 줄기가 된다. 신시배달국, 고조선, 고구려를 관통하는 소도의 경당 교육이 백제에서는 싸울아비로, 신라에서는 화랑으로,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때는 독립군으로, 6·25때는 군인과 학도병이 되어 구국의 혼으로 승화했다. 그렇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산화한 젊은이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혼이다. 정사를 놓고 개인과 당파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자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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