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에게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1.07.2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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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삼월이 시작되었다. 겨울이 마지막 힘자랑을 하듯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날 근무하는 유치원에서는 조촐하게 입학식이 열렸다. 올망졸망 병아리처럼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혹은 아빠의 외투 자락을 잡고 유치원 문을 두드렸다. 학교마다 늘 있는 이 시기의 가장 기본적인 행사였으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입학식은 코로나로 인해 우여곡절이 많았다. 학교 관계자들의 분분한 의견이 있었는데 작게라도 행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여 결국 약식으로 입학식이 이루어졌다.

지난해엔 아예 입학식이란 단어조차 실종되었던 상황을 돌아보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년에 비하면 한 시간은 족히 걸렸던 행사가 단 반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껏 치러온 입학식 중 가장 짧은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유치원엔 재잘재잘 참새처럼 수다스러운, 그리고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사월, 들에는 봄이 짙어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텃밭에 이것저것 채소 모종을 심었다. 첫 고랑에 고구마를 심고 그 옆으로 감자와 토마토, 그리고 땅콩을 심었다. 울타리에는 강낭콩과 호박, 오이 넝쿨을 올리고 옥수수도 몇 포기 담장 노릇 삼아 심었더니 그럴싸한 텃밭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과 하루 한 번씩 산책 삼아 들러 예쁜 말 열 개씩 들려주고 잘 키워보기로 약속을 했다.

반짝반짝 햇빛이 길을 나서기에 딱 알맞은 날에는 아이들과 소풍도 다녀왔다. 코로나가 여전히 호시탐탐 우리 주변을 노려 걱정이었지만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근처 가까운 자연식물원에서 콧바람을 쐬었다. 길 위에서 함께 꽃잎을 주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눈처럼 날려보기도 하고 이름 모를 들꽃에 아이들과 둘러앉아 숲 해설가 선생님으로부터 새로운 식물 탐색에 귀 기울여 보기도 했다. 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개미들에게 잠깐 갈 길을 양보도 해가며 즐거운 한낮을 보내는 사이 어느새 시간은 오월의 속에 있었다.

절기상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가 지나고 며칠 후 아이들과 드디어 감자를 캤다. 거름을 풍부하게 주지 않아서인지 감자꽃이 환하게 피질 않고 줄기도 연약해 좀 더 땅속에서 키우다가 유월 말이 되어서야 캤다. 감자 줄기를 걷어내고 땅을 파니 울퉁불퉁 감자가 굴러 나오고 아이들은 신기한 듯 두 눈을 반짝였다. 저마다 자신의 주먹만한 감자가 나오면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자랑도 하고, 알이 작은 감자가 나오면 다시 땅속으로 묻어주며 더 튼튼하게 자라라 할 땐 귀여워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날 수확한 감자는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내며 저녁에 부모님과 맛있는 요리를 해 먹고 내일 이야기해 달라고 숙제도 내주었다.

초록의 들판이 더욱 짙어지는 칠월이 지나가고 있다. 일 년 중 한 학기를 평가하고 마무리하며 지난주에는 여름방학에 돌입했다. 아이들이 돌아간 넓은 유치원에 휑하니 고요가 가득하다. 참새처럼 쉴새 없이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한동안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동안은 나도 성장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면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 어디서 어떤 시간 속에 있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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