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동산에서 고향을 그리다
묘향동산에서 고향을 그리다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1.07.22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야트막한 산이 있다. 입구에 `묘향동산 등산로'라는 안내표지를 보고 오르다 보면, 그야말로 둘레길 같은 산길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하게 있어 평지걷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거진 숲길은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고, 초여름이면 산딸기가 빨갛게 익어가며 새소리, 매미소리를 들려준다. 여름에는 뜨거운 햇빛을,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아주니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이다.

처음엔 이름만 듣고 유명한 묘향산의 이름이 떠올랐다. `묘향동산'이라는 지명 때문에 호기심이 많았는데 산 초입 언덕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비석에 새겨진 안내문을 보면 궁금증은 없어진다. 등산로 옆으로 묘지들이 많이 산재해있다. 이 묘들은 이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공동묘지이다. 두고 온 가족들과 고향산천을 잊지 못하고 살다가 통일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을 터이다. 오십여 년 전 지역의 한 독지가가 이 산의 땅 일부를 매입해 평안도민회에 기증을 한 후 실향민들의 묘들이 자리 잡으며 `묘향동산'이라는 지명도 생겨났다고 한다.

무덤들을 보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공동묘지라면 조금은 꺼려지기도 하는 그런 곳일 진데 왠지 이곳을 지날 때는 그렇지가 않다. 나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그런 사람들의 흔적이지만,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켜켜로 쌓였을까 싶어 애잔한 마음이 든다. 자유로운 영혼은 이미 훨훨 고향산천에 노닐지 않을까. 꼭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그래서인지 무덤들은 그냥 무늬만 있는 듯 느껴진다. 아마도 그들은 갈 수 없는 고향에 있는 유명한 산 이름을 이곳에 걸어두고 그 품에 들듯 잠들었을 터이다.

이 산을 찾는 이들은 단연 운동하기 최고라 입을 모은다. 요즘은 날씨가 더워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데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다. 새벽부터 출근 전에 가볍게 운동을 할 겸 다니는 이들도 있고 한낮에도 산에 접어들면 소나무 숲이 오히려 시원하게 해주니 걷기엔 그만이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찾는 이들도 가끔 만나게 된다. 부모나 조부모 손에 이끌려 이 산을 오르는 아이들도 훗날 고향을 떠올리면 이곳이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지척에 고향도 그립지 않던가. 유년의 추억이 있는 고향의 강과 산, 들판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달려갈 수 있는데도 늘 마음속에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곤 한다. 어린 시절 보았던 강물을 따라 흘러가던 뗏목, 등굣길에 만나던 물안개, 강변 푸른 풀밭에서 송아지를 데리고 풀을 뜯던 누런 소들의 모습, 이 아름다운 풍경은 이젠 만날 수가 없다. 모든 것들이 눈앞에 아련하지만 흐르는 강물 따라 바다로 먼 곳으로 흘러간 모양이다.

세월 속에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은 나의 욕심이지 싶다. 그리움 속에 저장되어 있는 고향은 아름답게 간직하면 되리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서있는 이곳 이 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