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멘탈
철학적 멘탈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7.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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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제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가슴이 아프다. 답사를 갔을 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고등학교 때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가 있어 철학과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철학은 강한 멘탈을 요구한다. 대학원 시절 한 학생이 박사학위를 받고 자살하였다. 그 학생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지도교수가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네”라고 하셨다.

철학적 방황은 정신을 힘들게 한다. 운동선수가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 몸을 혹사시켜 체력훈련을 하는 것처럼 철학자가 역량을 발휘하려면 정신을 혹사시켜 멘탈 강화훈련을 해야 한다.

멘탈 훈련은 체력훈련보다 몇 배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정신 강화훈련은 사람을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는다. 무엇을 해도 시덥지않고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정신을 놓을 수가 없다. 곧 한순간도 편안할 수 없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데카르트는 철학적으로 회의할 때 바닥 없는 우물에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흄은 철학적 회의를 할 때는 세상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고 친구들과 한잔하고 당구를 칠 때 삶의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편안하고 안락한 길을 놔두고 힘든 길로 가는 이런 인간들이 정상적으로 보일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있는 걸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일까? 내일 아침에 세상이 오늘처럼 계속될까? 내일도 해가 동쪽에서 뜰까? 안뜰 수도 있잖아.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걸 어떻게 알지? 이런 의문을 가지면 세상 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질문을 하면 미친놈 취급받는다.

딸이 나에게 묻는다. 아빠, 나 철학과 갈까? 그건 나에게 물어보지 말고 엄마에게 물어라. 나는 철학 하면서 사는 게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차라리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다. 그 어려운 길을 딸이 간다고 하니 겁이 덜컥 나서 책임을 엄마에게 미룬 것이다. 엄마에게 물으니 돌아오는 말. 절대 안 된다. 집안에 철학하는 사람(놈)은 하나로 족하다. 제정신 아닌 인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너까지 철학을 한다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 된다.

나의 철학적 방황을 묵묵히 옆에서 지켜준 집사람! 이런 표현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삶과 집사람의 참을성을 미화하기 위해 꾸며낸 말이다. 집사람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뭐지? 철학을 하면 다 저런가? 아이고 하필이면 내 남편이라는 작자가 철학을 하다니, 이 인간이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쓰고 학교 간다. 갔다 오면 가방 내팽개치고 논바닥과 숲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밤늦게 파김치가 돼서 들어온다. 철학이 병이라더니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구나. 아이구 내 팔자야! 그런데 딸이 철학과를 간다고? 절대 불가(不可)! 집사람은 집에서 철학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인상 쓰고 밥상머리에 앉으면 잠깐, 분위기 깨니까 머릿속에 철학 털고 와. 애들에게 전염될까 겁난다. 집에서 철학을 못 하게 하니 입산을 하지.

철학은 안정적인 멘탈을 방해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나도 다른 사람처럼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불운한 다이몬에게 사로잡혀 언제나 자신의 삶을 검토하여 불안정한 상태에 떨어져 산다. 남들처럼 스스로의 삶을 검토하지 않고 안온하고 편안한 삶을 살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철학을 안 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에 철학을 안 하느니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소크라테스는 일상적인 안온한 삶을 극구 거부하고 불편, 불안한 삶을 산다. 그 불편함을 견디면 살아남는 것이고 그걸 버티지 못하면 끝까지 못 간다. 제자의 명복을 빈다. 내 생에는 편안한 삶을 살기를.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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