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보다 더 자식 같아요
자식보다 더 자식 같아요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7.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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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어머니가 노환으로 몸져누우시자 우리 형제·자매들은 요양병원을 물색했다. 간호학교 출신인 둘째가 서둘러 수소문해서 의사 선생과 간호사가 상주한다는 시설 좋은 요양원을 골라 입원시켜 드렸다.

큰아들인 오빠는 책임 때문인지 이삼일 간격으로 뵈러 간다고 하고 남동생들도 다투듯 면회를 다녀왔다고 카톡으로 전하곤 한다. 나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어머니 입원하시고 이십여 일쯤 지난 후에야 어머니를 찾아뵐 수 있었다.

여섯 개의 침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병실 맨 안쪽 침대에 어머니는 자는 듯 누워계셨다.

“어머니, 저 왔어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다시 감아버리신다. 움푹 꺼진 눈두덩, 검버섯 핀 앙상한 얼굴빛, 몰라보게 초췌해진 모습 앞에서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주변이 소란스럽다. 옆의 침대에 누운 환자는 알 수 없는 소리를 계속 지껄이고, 요양보호사는 입구 쪽 환자의 기저귀를 갈면서 이러쿵저러쿵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문밖 대기실에서 여러 사람이 떠드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섞이는 병실의 분위기는 한시도 머물고 싶지 않게 메마르고 삭막한 분위기다.

나는 데스크로 달려가 왜 이러냐고 항의해 본다.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다고, 내일 모래면 성향별로 이동하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조용한 병실로 가실 거라고, 안심하라고 한다. 어쩌겠는가!

침대 곁으로 돌아와 가만히 어머니 손을 꼬옥 쥐어 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나는 세상에 할 일이 이것밖에 없는 듯 정성을 다해 어머니 손을 꼬옥꼭 주물러 드린다. 눈 감고 말문마저 닫은 어머니. 어머니는 지금, 싫다, 싫다, 양로원이 싫다고 온몸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덟 자식을 누구 못지않게 키우신 엄마, 평생을 애면글면 자식들 끌어안고 사신 엄마는 자식들이 자신을 버렸다는 모멸감으로 절망하고 계신 것이다.

오래전에 이웃에 살던 진안 댁 할머니가 관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불쌍한 사람, 죽으러 갔구나!' 혼잣말처럼 하시던 어머니. 양로원이란 의지가지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종착역이란 고정관념을 갖고 계셨다. 삼강오륜을 배우고 익히며 부모 공양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엄마 세대의 대부분은 다 양로원행을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자식들은 저희 좋을 대로 시대가 바뀌었다 하고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며 자식들보다 더 잘 보살핀다고 꼬드기며 양로원행을 부추기지만, 막상 양로원에 누워계시는 어머니의 양로원에 대한 인식은 더욱 견고해진 것 같다.

양로원에 누워 있다는 것은 자식들의 버림을 받은 것, 죽을 일만 남았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계신 것이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여덟 자식을 보란 듯이 키우셨지만, 자식들 여덟은 어머니 한 분을 모시지 못한다. 평생 사셨던 자신의 집에서 자식들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외면할 수가 없다. 차마 돌아설 수가 없다.

“엄마, 집에 가요. 제가 엄마 곁에 있을게요.” 그제야 엄마는 눈을 뜨신다. “정말이냐?” 이렇게 되묻는 것 같다. 요양병원에서 다시 집으로 모셔오는 날, 굳게 닫혔던 대문을 밀치자 화단에 피어 있던 꽃들이 환하게 반긴다.

추위도 아랑곳없이 주인 없는 뜰에서 스스로 핀 수선화 서너 무더기,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꼭 어머니를 반기는 몸짓 같다. 가슴이 울컥해진다. 엄마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한다. “엄마 집으로 돌아왔어요. 엄마가 심어놓은 꽃들이 먼저 알고 반기네요. 자식들보다 더 자식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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