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와 자족
자위와 자족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7.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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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뜻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사이고 인생사입니다. 기대가 크고 욕심이 많을수록 더더욱 그렇습니다. 돈과 지위와 명예와 사랑이 그렇고 자식농사와 인간관계가 그렇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란 말이 시사하듯 출발선이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능력과 노력과 시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환락에 빠진 금수저와 노블레스 오블리주하는 금수저의 삶이 다르고, 가난을 한탄하고 사는 흙수저와 보람을 일구어가는 흙수저의 삶이 다르듯이. 그러므로 행불은 신분과 재물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천상병 시인처럼 사는 게 소풍이라 여기고 살면 매사가 소풍이고, 고해라 여기고 살면 매사가 고통이고 괴로움입니다. 하여 사람들은 소풍과 행복을 꿈꾸며 삽니다.

그 꿈을 이루게 하는 촉진제가 바로 자위와 자족입니다. 아시다시피 자위(自慰)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함입니다. 인연과 처한 상황이 다소 실망스럽고 기대에 미흡할지라도 `괜찮아,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라고 자신에게 속삭이는 겁니다. 아니 상처입고 생채기 난 자신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부러져도 `이 와중에 다리만 부러졌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야'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당면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재기와 재활의 의지를 다잡는 것이 자위의 본령입니다. 자족(自足)은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이 정도면 충분해, 아니 만족해'라고 속삭이는 겁니다.

분수에 안분하고 만족하는 자세 즉 밝은 이성과 강한 의지에 의한 자족감과 자유로움 그리고 부동의 세계 속에 느끼는 행복감이 진정한 자족입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인연과 내 소유물이 된 재화와 켜켜이 쌓은 삶의 족적에 대하여 감사지정을 갖는 게 자족의 시작입니다.

내가 쉴 수 있는 집, 내가 먹는 음식, 내가 하는 일과 취미활동,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날마다 대하는 아침 햇살과 상쾌한 공기, 글 쓸 수 있는 공간과 커피 한 잔의 여유, 손녀와 손자의 재롱 등은 자족의 원료입니다. 이처럼 감사하고 자족할 게 너무나 많은데도 사람들은 결핍을 느끼고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웃음과 건강처럼 자족도 많은 학습과 훈련을 요합니다.

송익필은 `부족해도 넉넉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여유가 있고(不足而足每有餘), 넉넉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항상 부족하다(足而不足常不足)'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족하면 부러울 게 없어 권력과 금력 앞에 당당해질 수 있고 결핍타 여기면 더 갖고 싶고 더 얻고 싶어 권력과 금력에 아첨하게 되는 것처럼. 미국에 억만장자가 신문에 크게 광고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내게 증명하면 1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이를 본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저마다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습니다. 어느 청년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저명한 대학교수는 자신을 따르는 훌륭한 제자들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고매한 성직자는 날마다 하느님의 은총과 가호를 받아서 행복하고 저마다 100만 달러의 주인공은 자신이어야 한다고.

하지만 억만장자는 그들의 행복이야기에 감동하지 못해 실망스런 표정으로 면접장을 빠져나오는데 그때 마침 휘파람을 불면서 복도 청소를 하고 있는 나이 지긋한 청소부를 보고 느낀 바 있어 청소부에게 묻습니다. `어르신은 힘들고 고된 청소를 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행복한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하시나요?' 청소부가 답합니다. `저는 청소부로 일할 수 있어 그저 즐겁고 행복한데 저 사람들은 행복하다면서 100만 달러를 받으려고 안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억만장자가 `제가 찾는 분이 바로 당신입니다. 100만 달러는 당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부둥켜안았습니다. 자족이 낳은 선물입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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