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
소낙비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7.2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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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한여름, 마른하늘에 예리한 빛이 한 획을 긋는다. 다시 이리저리 푸른빛이 번득인다. 레이저 쇼를 하는듯하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그 뒤를 좇는다. 놀라서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리니 어스름이 서 있는 나무들이 바짝 몸을 움츠린다. 작은 풀들도 파르르 몸을 떠는 모습이 망막 렌즈에 희미하게 잡힌다. 새들은 이 소리에 놀란 나머지 땅으로 곤두박질 치며 죽는다고도 한다.

세찬 빗줄기에 가로막혀 차가 길 위에 섰다. 앞, 뒤로 달리던 차들도 온데간데없다. 갓길에서 안에 갇혀 그치기를 기다렸다. 반시(半時)가 지나자 포악이 끝이 났다. 언제 소란스러웠는지 모르게 자취도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차들이 쌩쌩 달린다. 바닥이 젖지 않았다면 날씨는 소나기의 완전범죄가 될 뻔했다.

도로에 느닷없이 나타난 폭주족처럼 화창한 날씨에 엄습한 난데없는 공포다. 이렇게 맑은 날의 소낙비는 언제 내릴지 모른다. 갑작스런 폭군으로 변해 길을 걷다가 만나면 대책이 없다. 피할 곳이 없어 온전히 비세례를 맞기 일쑤다. 이런 비는 짧고 굵다. 급한 만큼 길게 가지 못하고 금방 지치게 마련이다.

비에 놀란 건 약과다. 저녁뉴스엔 우박이 온 들녘에서 속상해하는 농부의 모습을 비춘다. 한창 자라던 농작물이 엉망이다. 고추는 쓰러지고, 채소는 구멍이 나 있다. 누가 여름날의 우박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꿈꾸어오던 수확의 기쁨을 앗아간 밭에서 얼마나 실망이 깊을까. 마음의 시큰한 좌절감은 또 얼마나 아플까.

차를 오가도 못하게 한 소낙비는 더러 인생에도 찾아온다. 한 사람을 마구 흔드는 폭도의 기질을 보여준다. 번개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천둥소리에 놀라 주저앉는다. 틈을 주지 않고 내리붓는 빗줄기는 기어코 비 맞은 생쥐처럼 우스운 꼴을 만들고야 만다. 나의 불혹대의 나이가 그랬다.

하나를 풀면 다른 하나가 밀려든다. 안간힘을 다해 해결하면 다시 하나가 몰려왔다. 이처럼 안 좋은 일은 왜 한꺼번에 몰려오는지. 머피의 법칙을 고스란히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온몸을 흠뻑 적시고서야 그친다. 기어이 죽고 싶다는 막다른 골목까지 나를 끌고 갔다. 발버둥치면서도 추락해버린 바닥에서조차 붙잡고 있었던 건 희망이다. 이마저도 놓아버리면 내가 너무 비참할 것 같아서다. 내 인생의 끝이니까.

캐슬린 노리스는 참을 수 없는 일은 견디는 것이라 했다. 지금, 내 곁에는 친정엄마와의 사별의 슬픔을 견디고 있는 동료가 있다. 엄마가 나와 비슷한 나이다. 가까이서 어린 손녀들을 돌보아주고 직장일로 바쁜 딸을 위해 집안일을 도와주던 분이시다. 손을 내밀면 늘 와 주시던 엄마를 많이 의지했을 터이다. 병원에 오간지 열흘 만에 겪게 된 이별이 어찌 쉽사리 받아들여지겠는가. 급성혈액암은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목 놓아 울 기회도 주지 않았다. 빈소에서의 그녀는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삼십대 중반인 그녀가 살아가는 여정에서 어쩌다 맞닥뜨리는 소낙비를 어찌 알랴. 번개와 천둥. 그리고 소낙비로 이어지는 인생에서의 머피의 법칙을 알 리가 없다. 그녀가 내 나이가 되면 그제야 이해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소낙비를 잘 견뎌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비가 그친 하늘에 고운 무지개가 떴다. 빨려들 듯 황홀하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란 시가 귓전에 아른거린다.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뛴다. 어디선가 행운이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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