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생(落花生) 2
낙화생(落花生) 2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1.07.2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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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주말마다 오락가락 거리는 장맛비가 아침부터 야속하게 추적거린다. 집안에만 있으려니 갑갑증으로 갱년기 증상처럼 이유 없이 답답하고 우울하다. 자라처럼 쭉 뺀 목은 이제나저제나 비가 개이길 바라며 연신 창밖 엿보기에 바쁘다. 다행스럽게도 한나절이 되자 바람씨에 먹구름이 서서히 벗어지고 발끈한 햇살이 고개를 든다. 이때다 싶어 냉커피와 우산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땅콩 밭을 기웃거리는 버릇이 생긴 나, 밭뙈기라고 보기도 어려운 몇 줄 되지 않은 땅콩 밭으로 향한 발길이 가볍다. 등산로 초입, 야트막한 언덕 갓길 따라 노부부가 땅을 개간하여 밭뙈기를 만들어 땅콩을 심은 밭이다. 군데군데 노랑나비가 내려앉은 것 같더니 어느새 밭뙈기가 샛노랗게 덧칠되고 있었다. 낙화생(花生)꽃물결 따라 비 갠 하늘처럼 맑아진 단상 앞에 한참을 미적거리며 서성였다.

“낙화생(花生)”이란 꽃이 떨어져서 생기는 열매로 땅콩을 이르는 별칭이다. 동글동글 탱탱한 땅콩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선 애써 알려 하지 않았다. 그저 심심풀이 땅콩으로 불리거나 정월 대보름 부럼을 깨물어 액땜하는 견과류로만 치부했다. 그러나 땅콩과 노예들의 연관성을 알게 된 후 무엇 하나 허투루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뒤섞여 마음이 어수선하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면서 노예제도가 시작되었다. 그때 아프리카에 살던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부렸다. 당시 고된 노동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은 노예의 음식은 값싼 옥수수와 열량이 높은 땅콩으로 끼니와 열량을 보충할 주식이었다. 그뿐인가? 미국은 농업 발달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노동력을 메우려고 흑인 노예를 데려왔고 그때 땅콩도 함께 들여왔다. 농장주는 노예들의 음식으로 옥수수뿐만 아니라 땅콩을 재배하여 식량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값싼 땅콩을 대량 재배하다 보니 차츰차츰 세상 밖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한 땅콩은 훗날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빈곤한 흑인들은 가난으로 삶을 지탱해 줄 씨알 같은 땅콩으로 삶을 연명했다 한다. 그렇게 땅콩은 노예들의 아픈 역사와 애환이 담긴 씁쓸한 식품이다. 부(富)가 뭣이라고 참으로 먹먹할 뿐이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도 꿈에 커다란 땅콩을 보면 건강하고 씩씩한 아들을 낳는 태몽이며, 땅콩을 주머니에 넣는 꿈은 재물이 들어온단다. 또한, 땅콩을 캐는 꿈은 사업번창으로 부귀가 얻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노예들에게 고통스러운 땅콩이 이렇게 상충된 꿈에 대한 해몽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퓨전요리 시대, 땅콩은 다양한 요리방법으로 우리네 입맛을 사로잡는 식생활에 감초처럼 따라다닌다. 나 역시 노예들의 주식이었던 땅콩이 최애 간식요리이며 최고의 식재료이자 요리법도 간단하다. 우선 깐 땅콩을 절구에 살짝 으깨어 놓고 해바라기씨와 호박씨도 준비한다. 궁중팬에 올리브유로 보리건빵을 타지 않도록 노릇노릇하게 튀긴다. 시럽에 준비한 견과류와 튀긴 건빵이 뜨끈뜨끈할 때 잘 버무려 견과류 옷을 입혀 건빵 강정을 만든다. 한소끔 뜨거운 김이 나가면 잘게 부순 땅콩과 견과류 때문에 고소하고 달달한 건빵 강정이 만들어진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무심코 집어먹다 보면 게 눈 감추듯 건빵 강정을 뚝딱 먹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샛노란 땅콩 꽃 주변에 쭈물쭈물 거리다 밭 끄트머리에 앉았다. 권태응 시인의 감자꽃을 보면 자주꽃 핀 건/자주 감자/파보나 마나/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하얀 감자/파보나 마나/하얀 감자 라 했다. 검은(자주)땅콩은 어떤 색의 꽃이 필까? 샛노랗게 핀 땅콩 꽃, 하얀 땅콩일까 검은(자주)땅콩일까? 뜸 금 없이 부질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난 또다시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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