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더위 식히는 음성 수정산성 둘레길
찜통 더위 식히는 음성 수정산성 둘레길
  • 이미란 충북도문화재硏 조사연구1팀장
  • 승인 2021.07.1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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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이미란 충북도문화재硏 조사연구1팀장
이미란 충북도문화재硏 조사연구1팀장

 

불볕더위가 시작되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시작된 휴가철에 매년 가는 바다와 계곡보다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여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산성으로의 여행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중 도민들에게 덜 알려져 한적한 음성 수정산성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현재까지 음성에는 열네 개의 성곽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망이산성을 비롯해 수정산성, 석인리산성, 신천리토성, 사향산성, 갑산리산성, 국사봉산성, 오대산성, 성본리토성, 이진봉산성, 장자봉산성, 팔성산성, 우등산성, 가막산성이다.

특이한 점은 음성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축조된 성곽들은 확인되었지만,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성곽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치소(治所)의 역할을 했던 읍성이 없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큰 피해를 본 음성이 인근 지역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정산성은 음성읍의 동쪽에 있는 해발 396m의 수정산 정상과 동쪽계곡 상단에 축조됐다. 성벽의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7m 정도이고 대략 2~3m 정도의 높이에 폭은 4m 정도이다. 성벽의 바깥으로 사각형식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은 3곳이 남아있다. 성벽을 따라 돌 수 있게 낸 길인 회곽도가 4~5m 폭으로 있으며, 성벽의 바깥쪽에는 돌을, 안쪽에는 흙과 잡석을 채워 쌓아올렸다.

수정산성으로 향하는 길에는 평곡리 약물제 마을이 위치하는데 마을 유래비에는 `1232년 몽고군 침입 시 박서 장군이 수정산성을 축조하고 방어선을 구축했는데, 극심한 가뭄으로 우물물이 없어 개천의 물로 식수 공급을 했는데 군사들이 집단으로 전염병을 앓았다. 이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물이 나올만한 곳을 이야기해 주고 홀연히 떠났는데 그곳을 파니 맑고 달착지근한 맛의 물이 솟아올라 이 샘을 약샘 영천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마을의 중앙에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 엉켜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평곡리 느티나무)가 있다.

이외에도 마을에는 석조보살입상과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살입상은 사람만 한 크기를 하고 두 손이 배와 가슴에 있어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고, 석조여래좌상은 세월의 상처를 그대로 품고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기원제를 지내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집집이 무병장수의 염원을 담기도 했다고 한다.

수정산에는 전설이 깃든 바위가 많다. 고려시대 무장으로 몽골군의 침략을 격퇴하고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박서 장군의 전승기념비가 있는 큰바위지대로 돌탑이 있다. 전투를 지휘했다는 장수바위, 장군바위를 지나서 둘레길을 걸어가면 크고 동그란 바위가 불안하게 얹혀 있다. 수정산 장수가 따뜻한 불볕을 받으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천둥이라도 치는 듯 큰 소리가 나 살펴보니 웬 사내가 낮잠을 자며 내는 큰소리였다. 시끄러운 소리를 잠재우려 돌을 던져 증산 장수의 발을 맞췄으나 증산 장수가 잠을 방해한 수정산 장수에게 직경 3m 정도의 돌을 던져 수정산 장수가 받아 다시 던졌고 증산장수가 다시 수정산으로 던져 그 모습이 공기놀이와 유사해 공기바위라는 전설이 있다.

수정산성 둘레길을 올라가다 보면 새롭게 복원된 수정산성이 보이고 성벽을 따라가면 울창한 나무 사이로 팔각정의 정자가 위치한다. 정자에 올라 내려다보면 음성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자의 주변으로 수정산 정상석이 위치한다.

수정산은 마을 주민들에게 간간이 이용되고 있으며 수정산성이 있고 둘레길이 있어 산책길로도 좋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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