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중조차 3
해중조차 3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1.07.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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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벽은 허물어져 남북이 통하고

처마는 성글어 하늘이 환하게 보이네.

황량함이 서글프다고 말하지 말라.

가장 먼저 바람과 달을 맞이하네.



반갑습니다.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에는 망초꽃이 안개처럼 피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무문관 제8칙 해중조차 3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레에는 특별히 따로 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 이것을 법의 바퀴라 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그 이름을 붙어줄 때만이 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때부터도 계속 굴러 왔다는 겁니다. 실은 그 이름이야 어떤 이름을 붙여도 무관하다는 말이지요.

만약 우리가 각각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면서 김철수를 김영희로 바꾸라고 한다 해도 어느 날 김영희가 갑자기 남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전혀 성격이 다른 어떤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름에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이름은 단지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약속하여 부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김철수라고 부르면 불현듯 살아오면서 알게 된 어떤 이름이나 어떤 존재가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김철수 자신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실 김철수는 없듯이 우리는 어떤 이름과 그 의미에 자신만이 알고 있는 허구적인 상(相)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것들을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구의 생각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실재하지 않으며 명백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상(相)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이 된다는 말이지요. 그 어떤 일도 자신이 모르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같아 한순간도 따로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일어나는 어떤 일도 시간적인 개념에서 현재의 지금과 공간적인 개념에서의 여기에서 종횡무진으로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본성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든 저것이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지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요. 즉 그 이름에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니 우리는 이름을 만들어 놓고서 그 이름에 의미를 붙이고 심지어는 나중에 절을 올리기도 하고 굽신거리며 희로애락을 함께하기도 하며 결국 그 이름에 옴짝달싹을 못하게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8칙 해중조차 4를 살펴보도록 하고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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