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화
엘리베이터 문화
  • 박영자 수필가
  • 승인 2021.07.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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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나는 아파트 22층에 산다. 한 층의 높이를 3m로 본다면 66m 높이다. 이런 높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엘리베이터 덕분이다. 기원전 로마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엘리베이터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오래되었다.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계단을 이용하는 방법 두 가지뿐이다. 계단을 이용한다면 352개의 계단을 올라야 집에 도착할 수 있으니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기 전에는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25층 높이의 아파트이니 50세대가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한 집에 두 식구가 산다고 치면 100명이 이용하고, 세 식구로 친다면 150명이 이용하는 셈이니 엘리베이터는 고달프다.

이 아파트에 산지도 벌써 17년째이니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아이들을 만날 때이다. 아장아장 걷던 희진이가 키가 훌쩍 자라서 아리따운 여고생이 되어있고, 초등 1학년이던 지우는 수염자국이 선명한 청년이 되어 나를 굽어 내려다 볼만치 키가 크고 건장한 청년 대학생이 되어 곧 군대에 간다고 하니 말이다.

처음 입주할 때 같이 입주한 가구는 몇 가구 안 남았다. 이사 가고, 이사 오고가 이어지니 속된말로 원주민은 몇 집 안 된다. 그렇다보니 아는 얼굴 모르는 얼굴들이 뒤섞여 산다. 그동안 우리 아파트 나름대로 생활문화라고 할까, 그런 게 생겼다. 아는 사람이 함께 타면 반갑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디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아이들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새로 이사 온 낯선 얼굴이라도 목례를 하거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일이 보통이다.

지난 주말 어미를 보러온 서울 사는 아들이 나를 돕겠다고 분리수거를 한다며 쓰레기통을 들고나갔다 오더니 “어휴, 쑥스러워서 원.” 하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친절하게 인사를 한다며 이상하다는 듯 히죽거린다. 당연한 일을 가지고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우리 아파트에는 그런 일이 절대 없거든요. 아주 냉랭해요.” `절대'라는 말과 `냉랭'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니 내가 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네가 먼저 인사하는 것을 시도해 보지 그랬어.”

“그러다가 미친놈 소리 들으라고요?”

하긴 인사해서 뺨 맞는 법 없다지만 남이 안하는 짓을 하면 옳은 일이라도 그 사람이 바보가 되는 풍토이니 그런 용기를 내기도 쉽지는 않으리라.

문을 꼭꼭 닫고 사는 아파트 생활에서 이웃과 얼굴 마주보는 것은 엘리베이터에서뿐인데 거기서도 눈 한 번 못 맞춘다면 이웃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 서울로 이사 간 보람이 엄마는 그 냉랭하고 어색한 엘리베이터 문화를 바꾸어 보고 싶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먼저 상냥하게 인사하는 것을 시도한단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사람이 그립고, 옛날이 그리운데 엘리베이터에서나마 아는 체 하고, 웃으며 한 마디 인사말이라도 건넬 수 있는 그런 풍토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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