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늙은 산양이야기
어느 늙은 산양이야기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07.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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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헌사! 사전적 의미는 `축하하거나 찬양하는 뜻으로 글을 바치다.'라는 것으로, 책을 쓴 사람이나 발행한 사람이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 바치는 뜻으로 쓴 글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작가들은 타인에게 헌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책 작가 고정순도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만만한 책방>에서 책의 한 면을 온전히 할애하여 헌사를 썼다. `-나에게-' 라고. 그리고 그 면 하단에 `고정순. 죽기 딱 좋은 날을 궁금해하며, 돋보기와 지팡이를 벗 삼아 산다.'라는 짤막한 글을 작가 약력에 덧붙였다.

독자들의 시선이 머무는 장면이다. 책을 보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먹먹해지는 대목이라 그럴 거다.

독자층이 두터운 작가라, 그녀의 삶을 알기에 고개가 더 끄덕여지는 것일게다. 작가, 제목 그리고 헌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책이다.

고정순 작가의 자칭 `출판계의 어둠 담당, 다크 그림책의 대표작가'라는 말에 누구 하나 반기를 들지 않을 정도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이야기하는 작가다.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또한 죽음에 대한 책이다. 젊고 멋졌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팡이 없인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늙은 산양이 `죽기 딱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죽기 좋은 곳은 역으로 살기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그런 곳은 어디일까? 죽기 딱 좋은 곳을 찾지 못한 산양은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와 보니 그곳이 그곳이었던 거다. 하여 그곳에서 산양은 먼 곳으로 떠난다.

`삶에서 맞닥뜨리는 시련과 부정적인 사건은 막을 도리가 없다. 찾아오면 온몸으로 겪을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끝에서 고통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는 의식의 전환을 찾는다면 지지 않을 수 있다.'라고 고정순 작가는 말한다. 그 과정이 작가에게는 타자에 대해 생각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통렬하게 고민하는 때였다고 한다. 이렇게 획득한 그 힘을 작가는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에서 늙은 산양에게 노란 지팡이를 선물 했다. 삶을 극복하고 얻은 힘은 늙음을 떠받치는 힘이 된 것이다.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중 마지막 8단계인 노년기를 자아통합의 시기라 했다. 긍정적인 것 만큼이나 부정적 경험도 전 생애에 걸친 적응과정이라 여긴 그의 학설은 매 단계마다 극복해야 할 위기가 있다고 봤다. 노년기에서 극복해야 할 위기는 죽음을 위엄과 용기로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 했다.

노년기는 더 이상 사회와 가정에 필요치 않은 존재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나온 생이 옳고 적합했는지, 자녀들 양육은 잘해냈는지, 내 인생의 어두운 면은 무엇인지를?.

자아통합이라는 이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에는 인정과 칭찬을 그러지 못한 내 인생의 그림자에는 위로를 담아 살포시 안아 주는 과정을 거치면 죽음을 용기 있게 마주 볼 수 있을까?

그래, 고정순 작가의 울림이 있는 헌사처럼, 매 단계를 극복한 나에게 헌사와 위로를 준다면 나의 지난했던 인생을 떠받칠 수 있는 튼튼한 지팡이를 미래의 나에게 선물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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