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의 꿈
담쟁이의 꿈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7.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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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안방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뒷집의 작은 채마밭은 곡식이며, 곤충과 같은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작은 채마밭에는 없는 게 없다. 이른 봄이면 뒷집 남자는 제일 먼저 작은 채마밭에 냄새가 지독한 거름을 뿌려놓는다. 하지만 나는 내 눈요깃감을 생각해서 참기로 했다. 고약한 냄새도 한동안 코를 막고 있으면 참을 만하다.

냄새가 사라지려면 족히 보름은 지나야 한다. 그동안에도 창문은 며칠에 한 번 그것도 아주 잠깐 열어본다. 그렇게 고약한 거름을 뿌려놓은 밭에는 감자와 고추 그리고 녹색 우산을 뒤집어 놓은 토란이며, 튼실한 대파, 언제나 탐이 나는 적 상추도 심어 놓았다. 키 작은 곡식은 가운데 심어 놓고 가장자리로는 옥수수가 병풍이 된다. 그것도 모자라 주인은 우리 집을 경계로 세워놓은 나뭇더미 바로 옆으로 호박도 잊지 않고 심어놓았다.

처음에는 커다란 호박 덩굴이 성큼성큼 올라와서는 우리 집 안방을 염탐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호박잎은 훔쳐보는 것도 시들한지 안방 창문을 지나 더 높이 올라가 버린다. 조그만 창문은 금세 건강한 짙은 초록색 호박잎의 자연산 버티칼이 쳐진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호박넝쿨이 지나간 자리를 되짚어 올라오는 녀석이 있다. 담쟁이넝쿨이다. 느릿느릿 마치 달팽이가 기어올라오듯 그렇게 요란스럽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게 낮은 포복으로 올라온다.

담쟁이에 비하면 호박넝쿨은 속 빈 강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여름에 몰아치는 폭풍우에도 호박 넝쿨은 힘을 잃고 널브러지기 예사이다. 하지만 담쟁이는 그렇지가 않다. 담쟁이의 발은 벽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흡착근이 있어 아무리 모진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는 법이 없다. 서두르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작은 담쟁이 잎 하나는 주르륵 수천의 식솔을 이끌고 올라간다. 높으면 높을수록 넓으면 넓을수록 담쟁이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요 며칠 이어지는 장마로 담쟁이는 충분한 수분을 취해서인지 더욱 푸르게 오르고 있다. 잎은 더욱 넓어지고 줄기도 점점 단단해져 옆으로 옆으로 또 다른 가지를 만들며 같이 올라가고 있다.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게 담쟁이들은 서로에 대한 연대감으로 그렇게 벽을 푸르게 물들인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다. 온전히 제 혼자의 힘으로 나고, 이곳을 오르는 중이다.

우리도 담쟁이가 될 수는 없을까? 지금은 모두가 힘든 시간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 확산세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 코로나, 레드, 코로나 블랙, 이 모두가 코로나로 인해 겪는 우울증과 불안, 분노, 절망을 겪는 사람들의 건강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서일까, 요즘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이어져 불만이 극도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만든 것이 요인일 터이다. 그야말로 요즘은 불신의 시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도 코로나가 들이닥칠지도 모른다. 찻집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사람들을 훑는 의심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그랬으면 좋겠다. 담쟁이처럼 손과 손을 꼭 잡고 떨어지는 사람 없이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담쟁이가 그 넓고 높은 벽을 푸르게 물들이듯 우리도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과 위로로 물들이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새 담쟁이는 내가 뒷집 채마밭을 관찰하듯 우리 집 안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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